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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척이는 비, 마음조차 질척이네.

心田農夫 2006. 1. 31. 17:40
 

올여름은 그렇게도 무덥더니

이제 가을인가 하였더니, 시도 때도 없이 빗줄기가

땅으로 땅으로 향하기만 하누나.

이제는 따스러운 태양이 내리쬐야 곡식이 익어가련만

이레 저래 농부의 가슴만이 타드려 가누나

정치하는 분들 쌀이야 무엇이야 개방하여야 우리의 살길 생긴다고

하드라만서도, 

무식한 우리야 알 길이야 있단 가

농지 천하지 대본이요, 신토불이라 말들 하지만,

우리 것이 최고야, 명창님 말씀하셔도

돈이면 최고지 우리 것이면 어떻고 남의 것이면 어떠하리.

조선시대에도 

“이런들 엇더하며 저런들 엇더하료

萬壽山 드렁칙이 얼거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갓치 얼거져 百年가지 누리러라”

하지 않았더냐.

사는 놈만 살면 되지

그것이 이 나라의 위정자들 아니었더냐.

무슨 일 터지면 책임지는 놈은 없고

나 몰라라 하면서  희생의 재물로 부하 직원만 잡누나.

금의환향,  농부님네 돕고자하였더니,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하나님도 안타가워 하시는지

덧없이 비만 내리시는가보다

농부님 네들 속이야 타들어 가겠지만

힘없는 버슬아치에게 너무들 하셨네.

고향 찾아와 고향 땅 망치게 하는 자 그 어디 있으랴

고향은 어머니와 같다는 것은 백의민족의 마음이 아닌가.

한 때는 귀신 잡는 병사로 목숨 걸고 열사의 나라도 도왔건만

내 고향 돕자하였더니

그 마음 모르고 목숨 내노라 하자단 말인가

아 !  슬프도다.  이 나라의 이 민초들 

아 !  안타깝다.  이 나라의 이 몰골이

                                 

                                    

                                      


2004년 9월의 어느날 오늘처럼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가까이 지내는 이웃의 병원장 사모님이 힘없이 들어와

쓰러지듯 앉으시기에 따끈한 커피를 드리며 물었더니

6촌 오빠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마치고 오는 길이란다

조심스럽게 물으니 공무원으로  농업관계 수장이 되어

돌아와 동창들의 환영을 받는 자리에서 고향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다는데,

서울에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여 각 농촌에 보급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부하직원들 교육시켜 보급하여 그 해

농사지었으나 개량품종이 불량 탓인지 온 마을이

농사를 망쳤단다.

우리의 농부님 네들 사무실로 몰려와 아우성이니 

씨앗 나누어주었던 부하직원 대피 시키고 상부에 보고 하였으나

알아서 잘 처리 하라는 말만 반복하드란다

며칠을 시달리다 근무 중에 사무실을 나와 전혀 가보지도 않았던

고층 아파트에다 목숨을 맡겼단다.

조금 전 그 사모님 와서 차 한 잔같이 하고 돌아가셔는 데

문뜩 그때 생각이나 저장되었던 글 불러내어  옮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