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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친구란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신영복의 『처음처럼』, , 인용 위 작품은 신영복의 『처음처럼』에 실려있는 것임. 얼마 전에 퇴근길 차를 운전하는 중에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서울과 포항이라는 거리가 거의 연락이 없이 살아오다 자녀들 결혼식을 앞두거나, 누군가의 장례가 있을 때는 소식을 전하고는 했는데, 누님과 아내와 함께, 서울에서 출발하여 포항을 거쳐 통영에 들렀다. 부신을 들려 강원도를 거쳐서 서울로 간다며 포항의 해돋이 명소인 호미곶을 들리려고 하는데 가는 길에 포항에 있는 나를 잠시 만나고 가겠..

죽음이 두려운 이유

신은 음주와 똑같이 즐거운 도피 수단이다. 마음이 도망가 숨을 때 신과 음주는 별로 다르지 않다. 사회학적으로 음주는 아마 별로 좋은 건 아닐 것이다. 신에게로 도망가 숨는 것도 또한 좋을 게 없다.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윤회와 부활을 믿거나 몇몇 다른 형태의 신앙에 매달린다. 그러나 죽음이 무엇인지 전정으로 알고 싶은 사람은 신앙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받기만 하는 것은 미숙한 것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심리적으로 어떻게 죽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대개 죽음이라는 사실을 절대 들여다보지 않고 그 속에 함축된 놀라운 것들을 좀처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내세가 있다는 믿음을 통해 달아나거나 윤회사상에 매달리기를 더 좋아한다. 우리는 이렇게 위안을 주는..

책을 보다 문득

아테네 시민은 유죄투표로 소크라테스를 죽였다. 민주주의를 내세워 한국 국민은 주권 행사로 막무가내 왕을 선출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한가한 시간에 책을 보노라니 무척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기원전 399년 아테네에서 일어났던 일과 21세기인 2022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 다르면서도 한편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멜레토스의 고발로 법정에 세워진 소크라테스의 유무죄를 묻는 투표의 표 차이가 30만 표가 났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나는 표 차가 크게 났으면 났지 그렇게 근소한 줄은 몰랐습니다. 보아하니, 30만 표만 방향을 바꾸었으면 나는 무죄 방면되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라고 말한다. 아테네 인들은 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현자인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내본 것으로 21세기 이 시점까지 세계인들..

혼자 산다는 것

이산(離散) 첫째가 떠났다 둘째가 역시 떠났다. 그리고 아내도 마저 떠났다. 첫째가 떠나고 셋이 살았다 둘째가 떠나고 둘이 살았다 아내가 떠나고 혼자 살아간다. 첫째는 떠나 혼자 살았다. 둘째도 떠나 혼자 살았다. 그러다 둘이 합쳐 둘이 살았다 이제는 두 딸과 엄마 셋이서 산다. 그리고 떠나지 못한 나는 혼자 산다. 남과 북 허리가 갈라져 오고 갈 수 없음에 누님과 이산으로 살았는데 한나라 안에서 살면서 또 한 번의 이산의 아픔을 겪으며 산다. 창밖에는 주절주절 비가 내리고 있다. 아마도 저 비에는 생명의 싹을 담고 있으리라. 온 대지가 반기고 움츠렸던 식물들은 기쁜 마음으로 반기는 비일 텐데, 내 마음에는 설움으로 다가오는 비다. 사람은 사회적동물이라는데, 읍 단위의 작은 점포, 그것도 세월의 흐름 속..

봄처녀 오셨네

시샘 心田農夫 봄 처녀 사뿐 오시는 길목 동장군 심술궂은 시샘으로 눈 꽃 휘날리며 길목 막아서네. 인간만이 시샘이 있나 하였더니 계절도 막는다 한들 오는 시절 되돌아가랴 동장군 하얀 눈꽃 시샘에 봄 처녀 매화가지에 살포시 내려앉자 철없는 동장군 시샘에 배시시 웃음 짖네. 이제 봄이구나 이 해 인 강에서는 조용히 얼음 풀리고 나무는 조금씩 새순을 틔우고 새들은 밝은 웃음으로 나를 불러내고 이제는 봄이구나 친구야 바람이 정답게 꽃 이름을 부르듯이 해마다 봄이면 제일 먼저 불러보는 너의 고운 이름 너를 만날 연둣빛 들판을 꿈꾸며 햇살 한 줄 떠서 그리움, 설레임, 기다림--- 향기로운 기쁨의 말을 적는데 꽃샘바람 달려와서 네게 부칠 편지를 먼저 읽고 가는구나, 친구야

치국(治國)의 논리(論理)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신 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강의를 담은 『담론』에 치국의 논리에 대하여 “도(道), 덕(德), 예(禮)와 같은 윤리학은 치국(治國)의 논리이고 곧 정치학입니다.”라고 선생은 적고 있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동물이다, 그리고 사람은 정치적동물이라고 했다. 이 말은 인간은 각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사회 속에서 관계와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개인으로 사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들이 사회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에서는 정치가 이루어진다. 즉 정치는 관계론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관계론에 대하여 신영복 선생은 네 가지로 덕목으로 ‘성찰’, ‘겸손’, ‘절제’, ‘미완성’ 그중에..

슬픈 날의 초상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은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 되고 극복되기 위하여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 중략 -------- 슬픔이나 비극을 인내하고 위로해 주는 기쁨, 작은 기쁨에 대한 확신을 갖는 까닭도 진정한 기쁨은 대부분이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신영복의 『엽서』중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은 죽고 싶은 정도의 침통한 슬픔이 있어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작은 기쁨이 큰 슬픔을 위로해 준다고 말씀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데, 오나가나 ..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원시시대에는 토테미즘 사상이 사회 속에서 강하게 자리했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이다 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수신제가와 치국에 관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술의 힘을 빌려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는 것에 참으로 실소를 금치 못하겠고, 한편으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기는 선거를 앞둔 시점에는 용하다는 점쟁이를 제일 많이 찾는 것은 정치인들이라고 한다. 이제는 고인이 되셨지만, 3김 중에 한 분이 대선에 출마하며 풍수지리를 잘 안다는 지관의 말을 듣고 부친의 묘소를 명당자리로 이장하면 이번에는 대통령이 된다는 말에 부친의 묘를 이장했다는 소식을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려졌던 때가 있었다. 그런 간절한 그분의 소망은 이루지 못..

자본주의 사랑?

사랑은 스스로 존재합니다. 빌려주거나 빌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만이 사랑을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무엇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살 만큼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사랑을 길러낼 수 있는 충분한 마음이 있습니다. 샤론 살스버그 지음, 김재성 옮김, 『붓다의 러브레터』중세서 위의 글을 읽으며 언제인가 TV에서 보았던 두 가지 내용이 떠올랐다. 한 사례는 이런 내용이었다. 결혼을 앞둔 청년이 서로 사랑을 하면서 7년간 교제한 여성에게 이제 우리 결혼을 하자고 결혼 제의를 하니까, 여성이 이렇게 답변했다는 것이다. 오래된 내용이라 수치가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40평형의 아파트에서 살아야 하고 자가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