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 여운 29

된장과 분변을 구분 못 하는 재판관들

재판관은 은의 순도를 분석하는 사람과 같아서 가짜 정의와 진짜 정의를 구별하는 것이 그의 직분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중에서 350억대의 잔고증명서 4장 위조는 징역 3년, 체험 활동 시간이 과장됐다고, 표창장 1장 위조했다고 징역 4년 잔고증명서 위조했다고 실토해서 3년인가? 표창장 위조 안 했다고 하니, 반성할 줄 모른다고 괘씸죄로 4년인가?

모순(矛盾)의 진리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 아무것도 갖지 않았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無所有)의 역리(逆理)니까 법정의 『무소유』 중에서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서일까? 청소년기에 궁핍한 생활을 해서일까? 살아오면서 절약, 절제된 생활을 하며 살았고 이제는 그것이 몸을 벴다. 그러다 보니 쓰던 것을 버려야 하는데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언제가 쓸모가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버려도 될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리라. 일 년에 단 한 번도 입지 않는 옷가지들, 간단한 생활 가구들 등등, 법정 스님은 자신을 속세 속으로 이끌게 하였던 글 “무소유”라는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이런 벗 하나면 족 하련만

비아당사(非我當師) 나를 올바로 꾸짖어 주는 자는 나의 스승이고 나를 올바로 인정해 주는 자는 나의 벗이다. 순자 요즈음 이런 친구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사람을 친구를 갖지 못한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닌 자신이 부덕한 까닭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향에는 그런 친구가 있었는데, 객지 생활을 하면서 그런 친구를 두지 못했다. 죽마고우(竹馬故友)인 고향 친구도 이제는 이승에는 없다. 백아와 종지기 정도의 우정은 나누지 못해도 서로 허심탄회(虛心坦懷)하던 친구였는데, 지구여행 다 했는지 멀고 먼 천국 여행을 떠났다. 윗글을 되뇌자니 그 친구가 그리운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