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35

인명은 재천(人命在天)인 것을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플라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죽음은 둘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죽음은 일종의 소멸이어서 죽은 자는 아무것도 지각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말하듯 죽음은 일종의 변화이고 혼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주(移住)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만약 죽으면 아무 지각도 없이 죽음이 꿈 없는 잠과 같은 것이라면, 죽음은 놀라운 이득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 죽음이 그런 것이라면, 죽음이 이득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그러면 영원(永遠)조차 단 하룻밤보다 더 길어 보이지 않을 테니까. 또한 죽음이 이승에서 저승으로의 이주와 같은 것이라면, 그리고 사람들 말처럼 죽은 사람은 모두 그곳에 있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는가? … 그곳 사람들과 대화하고 함께하..

모순(矛盾)의 진리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 아무것도 갖지 않았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無所有)의 역리(逆理)니까 법정의 『무소유』 중에서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서일까? 청소년기에 궁핍한 생활을 해서일까? 살아오면서 절약, 절제된 생활을 하며 살았고 이제는 그것이 몸을 벴다. 그러다 보니 쓰던 것을 버려야 하는데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언제가 쓸모가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버려도 될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리라. 일 년에 단 한 번도 입지 않는 옷가지들, 간단한 생활 가구들 등등, 법정 스님은 자신을 속세 속으로 이끌게 하였던 글 “무소유”라는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사랑은 인생을 성숙시킨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존재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이러한 적극적 관심이 부족한 곳에는 사랑이 없다. 주는 행위로서 사랑하는 능력은 개인의 성격 발달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성격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발달되어 간다는 그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중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러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은 고독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감옥에서 탈출하려는 인간의 절실한 욕구가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아닐까? 이 고독의 시작은 신의 착각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 지라, (창2:7)”“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

인생이란 고립무원이 아니던가?

우리는 나이가 들고 서서히 정신이 빠져나가면 어린애처럼 속이 없어지고 결국 원하건 원치 않건 자식이 있건 없건 마누라나 남편이 있건 없건 돈이 있건 없건 잘 살았건 잘못 살았건 세상 감투 썼건 못 썼건 잘났건 못났건 대부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고려 시대에 60세가 넘어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밥만 축낸다고 모두 자식들의 지게에 실려 산속으로 고려장을 떠났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노인들의 고려 장터가 되고 있다. 한번 자식들에게 떠밀려 그곳에 유배되면 살아서 다시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그곳이 고려 장터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곳은 자기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도 가기가 싫다고 해서 안 가는 곳도 아니다. 늙고 병들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