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23

진정한 친구란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신영복의 『처음처럼』, , 인용 위 작품은 신영복의 『처음처럼』에 실려있는 것임. 얼마 전에 퇴근길 차를 운전하는 중에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서울과 포항이라는 거리가 거의 연락이 없이 살아오다 자녀들 결혼식을 앞두거나, 누군가의 장례가 있을 때는 소식을 전하고는 했는데, 누님과 아내와 함께, 서울에서 출발하여 포항을 거쳐 통영에 들렀다. 부신을 들려 강원도를 거쳐서 서울로 간다며 포항의 해돋이 명소인 호미곶을 들리려고 하는데 가는 길에 포항에 있는 나를 잠시 만나고 가겠..

슬픈 날의 초상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은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 되고 극복되기 위하여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 중략 -------- 슬픔이나 비극을 인내하고 위로해 주는 기쁨, 작은 기쁨에 대한 확신을 갖는 까닭도 진정한 기쁨은 대부분이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신영복의 『엽서』중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은 죽고 싶은 정도의 침통한 슬픔이 있어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작은 기쁨이 큰 슬픔을 위로해 준다고 말씀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데, 오나가나 ..

비 오는 날의 사색

우리는 생애의 중요한 요인인 ‘의지’라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은 아니다 그것은 결정이며 판단이고 약속이다. 사랑이 단지 감정이라면 서로를 영원토록 사랑하겠다는 약속의 근거는 사라지고 만다. 감정은 생겼다가 없어질 수 있다. 에리히 프로의 『사랑의 기술』중에서 토요일 늦은 출근을 하는데 차 앞 유리에 토닥토닥 빗방울이 줄지어 내린다. 주오일제 근무가 시행되기 전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일주일 중 가장 손님이 많은 날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같은 업종의 협회에서 둘째와 넷째 일요일을 공식 휴업으로 정했었는데, 그마저도 쉬지 않는 날이 다수였다. 그러던 것이 주오일제가 시행되고는 주말에는 손님이 별로 없다. 그런 주말인 오늘인데, 비까지 추적이고 내리니 오늘은..

그가 그리운 날이다

친구야, 돌아오렴. 친구야 오늘도 나는 보고 듣고 말하며 지구에 산다. 영일대 바닷가 이 층 정자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보며 너와의 옛일들 떠올려 본다 너울 파도를 보니 방파제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져 하얀 포말의 죽음 되었다 다시 푸른빛 바닷물로 부활하던데 친구야 은하 여행 가던 발걸음 돌려 다시 지구별로 걸어 돌아오렴. 저 파도처럼 마지막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 전날 여행하며 소주 한잔 나누자 했던 그 약속은 어이하고 혼자 떠나야 했니 친구야 넌 오늘은 보지도 듣지도 말도 못 곳에 있구나 이란 글을 올리고 퇴근하여 친구가 그리워 지난 일기장을 들쳐 보니, 친구를 떠나보내고 돌아온 다음 날 영일대에 앉자 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렸던 그 날의 일이 위의 글과 함께 적혀 있었다. 어제도 그 친구가 그리워 일기장을..

이런 벗 하나면 족 하련만

비아당사(非我當師) 나를 올바로 꾸짖어 주는 자는 나의 스승이고 나를 올바로 인정해 주는 자는 나의 벗이다. 순자 요즈음 이런 친구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사람을 친구를 갖지 못한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닌 자신이 부덕한 까닭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향에는 그런 친구가 있었는데, 객지 생활을 하면서 그런 친구를 두지 못했다. 죽마고우(竹馬故友)인 고향 친구도 이제는 이승에는 없다. 백아와 종지기 정도의 우정은 나누지 못해도 서로 허심탄회(虛心坦懷)하던 친구였는데, 지구여행 다 했는지 멀고 먼 천국 여행을 떠났다. 윗글을 되뇌자니 그 친구가 그리운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