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3

이해와 오해의 간극(間隙)

하나의 현상을 가지고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걸 보아도 저마다 자기 나름의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 남이 나를, 또한 내가 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이해하고 싶을 뿐이지.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타인(他人). 오해란 이해의 이전 상태가 아닌가.…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중에서 손님으로 오셨던 한 사찰의 보살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이 절에 다니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까지, 시간 가는지도 줄도 모르고 이야기했다. 자신이 사는 면으로 들어가는 막차 시간이 돼서야 일어서 가셨다. 그 후 두어 달이 지나서 불쑥 점포에 들어와서 손에 들었던 보자기를 풀면..

막걸리 한 사발에 수다 보따리 펼칠 분.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굳이 말을 걸어주지 않아도 좋다. 아무 말이 없어도 그냥 나를 이해해 준다는 표정을 지을 줄 아는 사람. 어쩌면 횡설수설 두서없을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을 정도면 된다. 우린 누구나 수다가 필요한 사람들이기에 누구의 수다든 들어줄 여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