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속을 후련하게 하는 광고문구

心田農夫 2014. 8. 20. 14:26

 

                                                                           김홍도 <씨름> 국립중앙박물관

 

 

 

메일을 통하여 날아드는 광고들, 매일 메일로 날아드는 광고메일은 보지도 않고 대부분 삭제를 한다. 그러나 책에 대한 광고는 대체로 열어보고 삭제를 하는 편이다. 오늘도 메일을 확인하던 중 책에 대한 광고메일이 있어 열어 보았다. 열어보니 이런 광고 문구가 있었다.

 

미국의 손석희 ‘빌 맥고환’이 알려주는 세상을 움직이는 부드러운 영향력의 비밀!

 

참으로 신선한 느낌이다. 보통 이런 내용의 글을 쓸 때마다 사대주의 사상을 볼 수 있었는데, 위의 글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한 예로 희망이 보이지 않던 수단에서 의술로 희망을 주었던 ‘울지 마 톤즈’의 주인공 이 태석 신부에 대하여 “수단의 슈바이처 이 태석신부” “한국의 슈바이처 이 태석신부“라고 하면서 방송에서 한참이나 떠들썩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위의 광고 문구는 참으로 신선하기만 하다. 물론 그런 것을 사대주의 사상에 비유하는 것이 침소붕대(針小棒大)라 말할 사람도 있으리다. 그러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작은 문구 하나에도 보이지 않게 배여 있는 사대주의 사상이 어디 한둘이랴

 

 

 

                                                                        김홍도의 <무동> 국립중앙박물관

 

 

 

식민지의 국어시간 

                       문 병 란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20리를 걸어서 다니던 소학교

나는 국어 시간에

우리말 아닌 일본말.

우리 조상이 아닌 천황을 배웠다.

 

신사참배를 가던 날

신작로 위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가,

일본말을 배워야 출세한다고

일본 놈에게 붙어야 잘 산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조상도 조국도 몰랐던 우리,

말도 글도 성까지고 죄다 빼앗겼던 우리,

히노마루 앞에서

알아들을 수없는 일본말 앞에서

조센징의 새끼는 항상 기타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조선말을 쓴 날

호되게 뺨을 맞은

나는 더러운 조센징,

뺨을 때린 하야시 센세이는

왜 나더러 일본 놈이 되라고 했을까.

 

다시 찾은 국어시간,

그날의 억울한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다시 나는 영어를 배웠다.

혀가 꼬부라지고 헛김이 새는 나의 발음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나는 국어선생이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간다는 한글,

나는 배고픈 언문 선생이 되었다.

 

지금은 하야시 센세이도 없고

뺨 맞은 조센징 새끼의 눈물도 없는데

윤동주를 외우며 이육사를 외우며

나는 또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어릴 적 알아들을 수 없었던 일본말,

그날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는데

다시 내 곁에 앉아 있는 일본어 선생,

내 곁에 뽐내고 앉아 있는 영어 선생,

어찌하여 나는 좀 부끄러워야 하는가.

 

누군가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내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데

까아만 칠판에 써놓은

윤동주의 서시,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글자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 슬픈 국어 시간이여.

 

 

〇 히노마루 : 일장기를 가리키는 일본말

〇 기타나이 : ‘더러운 놈’이라는 뜻의 일본말

〇 센세이 ; ‘선생님’이라는 뜻의 일본말

 

 

 

 

                                                                           김홍도 <신행>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후기의 우암 송시열은 친필로 大明天地 崇禎日月”라고 적었다지. 풀어보면 “조선의 하늘과 땅은 명나라 것이고 조선의 해와 달도 숭정황제의 것”이라는 뜻이란다. 존명사상(尊明思想)의 극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본토를 지칭하는 ‘내지(內地)’ 첫 자와 조선의 ‘선(鮮)’자에서 따온 내선일체(內鮮一體),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일본의 책동 정략에 선우순은 김흥건, 나일봉과 함께 일본과 조선은 공존공영(共存共榮)이라는 허울아래 대동동지회(大東同志會)를 만들어 회장이 되었다. 친일사상(親日思想)의 극치였다.

 

일본이 망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되자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은 국가수반임에도 자위권인 작전 지휘권을 미국의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에게 넘겨주었고 60년이 지난 오늘날에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해도 우리가 작전 지휘권을 행사 할 수 없고 전시작전통제권에 의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이관 된다.

 

뿐이라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이 한글을 과학적인 글이요 아름다운 글이라며 그 우수성에 감탄을 하는데도,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간도 쓸게도 없는 인간이 있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하와이 다음으로 미국의 주가 되자는 말도 서슴없이 해대는 친미사상(親美思想)의 소유자가 많은 세상이다.

 

위 문병란 시인의 시(詩) “식민지의 국어시간”은 내가 참 좋아하는 시(詩)이고 자주 인용하는 시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의 우리 현실을 너무도 잘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작은 광고문구 하나에 존명사상, 친일사상, 친미사상을 논하는 것은

 

위 문병란 시인 마음과 같은 마음이고 비록 시골 이름 없는 촌부이기는 하나 나라 돌아가는 꼴에 나라를 걱정함이다. 이렇게 나라걱정 하는 이가 한둘이랴, 그리고 어디 어제 오늘이겠는가? 내 존경하는 다산 정약용 선생도 이십 때 초반에 이런 시(詩)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하시었다.

 

 

 

                                                                           김홍도 <점심> 국립중앙박물관

 

 

 

술지(述志) : 내 뜻을 밝히다

 

                            다산 정약용

 

슬퍼라 우리나라 사람들

주머니에 든 것처럼 갇혀 있네.

삼면은 너른 바다가 둘러싸고

북쪽은 높은 산이 겹겹이 둘러

사지를 항상 웅크리고 있으니

뜻과 기상을 어찌 채우리.

성현(聖賢)은 저 멀리 있으니

뉘라서 이 어둠을 밝혀 주려나.

고개 들어 세상을 보니

환한 모습 보려 해도 눈앞이 어둑하네.

남 따라 하기 급급해서

좋은 걸 가려낼 틈이 없고

바보들이 멍청이를 받들면서

떠벌려 함께 받들게 하니

단군(檀君) 때만도 못하구나

순박한 풍속이 있었던 그때.

 

 

 

                                                                          김혿도 <서당>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