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다시 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습니다.

心田農夫 2014. 8. 15. 15:16

 

                                     마티스 <춤> 1910년 캔버스에 유채,260X391cm, 상트페르부르크, 에르미타슈 미술관

                                               다니엘 아라스의 미술 강연<서양미술사의 재발견>에서 인용

 

 

 

어제부터 『서양미술사의 재발견』이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읽다 보니 봉사하던 생각이 납니다. 포항미술관에서 하는 도슨트 교육을 수료를 하고 한 1년간 도슨트로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교육은 받았지만, 미술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나름으로 열심히 해보겠다고 큰돈(?)을 들여 소형 녹음기도 사서 녹음을 하여 듣기도 하고 이런저런 자료 찾아 나름의 원고를 만들어 배우가 대본을 들고 연습하는 것처럼 짬이 생기면 틈틈이 연습을 하고는 했는데,

 

직업이 있고 봉사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데, 시간은 부족하고 여건상 봉사활동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에 틈틈이 미술에 관한 책을 보면서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술용어의 생소함 등, 별 진전이 없습니다.

 

며칠 전에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는 책을 읽다 보니 미술에 관한 장이 있기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읽다 보니 한 동한 안 읽었던 미술에 관한 책을 보아야 겠다는 생각과 다시 한 번 도슨트에 도전을 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지금 『서양미술사의 재발견』을 읽고 있습니다.

 

 

 

                            오귀스트 로댕<키스> 1886~98년, 대리석, 139X111X118cm

                                  우정아의 <명장, 역사를 만나다>에서 인용

 

 

 

우리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면, 바로 미술 작품 특히 종교에 뿌리를 둔 미술 작품(대개가 그런 경우지만 을 ‘종교적으로’대하는 것이다.

 

현대의 미술관은 방문객이 한때 신성하게 모시던 물건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위안과 인도를 간구하는 장소는 결코 아니다.

 

여러 나라에서는 미술관을 보란 듯이 새롭고도 세속적인 환경 속에 지어놓고, 종교 미술 작품에서 신학적인 맥락을 제거해 버린다(그것이야말로 그 작품의 제작자의 바람과 는 반대이겠지만)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중에서

 

 

 

마르셀 뒤샹 <샘> 1959년 , 파리, 국립 현대미술관, 조르주 퐁피두 센다.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에서 인용

(이 작품은 '레디메이드' 로 우리가 타일가게에서

볼 수 있는 일반 변기를 그대로 출품 한 것이다.)

 

 

레디 메이드 : 예술가의 선택에 의해 예술 작품이 된 기성품 

 

 

 

작품이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들은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그림을 보고 나름의 느낌이 있는데, 현대미술 추상화에 대하여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특히 제목 명에 제목이 없다는 ‘무제’라고 붙어있는 작품은 정말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작품을 설명하려면의 내 자신 그 작품에 심취하지는 못 하드래도 이해는 해야 하는데---

 

그나마 추상화라도 제목이 있다면 제목의 뜻을 생각하며 작품을 보면서 작가의 뜻을 유추해 보기라도 하련마는 ‘무제’라는 작품을 대할 때면 미술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난감하기만 합니다. 언제가 은퇴를 하거나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다시 도슨트로서 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자신이 없어 마음뿐입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과 붉은 사각형>

                                                 1915년. 뉴욕, 현대 미술관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에서 인용

 

 

추상화(抽象化)는 주변의 사물들에 대해 개념이나 특징들을 파악하여 의미나 속성 따위를 추출하여 그려내는 그림이다. 대문에 추상화도 알고 보면 별로 어렵지 않다.

       ---------------- 중략 -----------------

추상화, 마음으로 다가서자. 어떤 추상화의 제목이 ‘무제’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자가가 자신도 특정할 수 없는 어떤 감흥을 그림으로 표현해 낸 것이므로

 

자신과의 교감이 없으면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된다.

추상화 감상의 포인트는 ‘무엇을 그렸을까’라는 것보다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가’ 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추상화 감상법에 대한 도슨트 교육 자료에서 인용

 

 

 

 

                                                 마크 로스코 <무제> 1955.137.5X69.5cm, 예루살렘 이스라엘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