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잊고 산 시간과 사람들

心田農夫 2018. 5. 22. 12:19

 

낯선 객지생활을 하면서 적응하노라 앞만 보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세월을 살아왔으니 딱히 객지 운운하는 것도 어찌 보면 생뚱맞은 소리 같지만, 이곳이 고향인 분들의 말처럼 바닷가라 텃세가 좀 샌 것이 아니지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사람 사는 곳에서 정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 인닐까 생각을 하다가도 도무지 정을 주지 않는 이곳에서 직장생활도 아닌 장사를 하려니 참으로 힘들었던 세월임에 틀림이 없다.

 

 

 

 

일요일 집에서 리포트를 하느라 참고할 만한 책을 찾다가 알몸인 많은 책들 속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포장지로 감싸인 책이 하나 있었다. 예전에는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면 그 서점의 상호나 특색 있는 포장지로 책의 표지를 덧입혀주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시절의 책인 것 같았다. 모든 책은 누드상태인데 혼자 옷(?)을 입고 있었던 것도 눈에 띄었지만, 제목 나를 이기는 싸움도 눈길을 사로잡는데 한 몫을 했다.

 

 

                     

                         (포장지로 덧 싼 책, 죠 하이암스나를 이기는 싸움』모습)

 

 

책장에서 꺼내어 책을 펴보니 중간 문장에서 부터 빨간 볼펜으로 줄이 쳐 있는 것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줄 따라 눈길이 따라 내려간다.

 

당신은 현재에 사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미래도 과거도 아닌. ()에서는 삶은 현재 순간을 포착해야만 한다고 가르칩니다. 현재에 삶으로써 자기 자신과 환경에 풍족하게 교감할 수 있고 에너지도 흩트리지는 일이 없이 항상 이용 가능합니다. 현재에는 과거와 달리 미련이란 없지요. 미래에 신경을 쏟으면 현재는 생생함을 잃고 맙니다. 살아야 할 시간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이 순간에 하는 행위가 다른 아무 때도 아닌 바로 이 순간에서만 당신과 합일될 것이며 그 행위와도 일치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선입니다. 무언가 하고 있는 동안 당신은 그것을 완전히 하고 있는 셈이지요.

                                                                         죠 하이암스나를 이기는 싸움인용

 

 

 

 

 

빨간 줄이 쳐져있는 위의 문장을 읽고 다음 장으로 넘겨보니 여러 군데 빨간 줄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서서 밑줄 친 부분들을 눈으로 읽으며 마지막 장을 보고 덮으려는 순간 종이 한 장이 툭 떨어졌다. 주어 들고 사등분으로 접힌 것을 펴서 보니 그 당시의 편지지에 메모처럼 간단히 적은 내용이 아련한 추억의 시간으로 나를 인도한다.

 

                              (책 속에 사등분으로 접혀 있던 편지)

 

                                          

                                          올라오셨을 때 못 뵈어서 죄송합니다.

                          4일 날 오셔서 6일 날에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진식이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5일은 비번이었는데 잠자느라고 연락 못 드렸습니다.

                                          사진은 잘 받았습니다.

                                          사진 값으로 책 한 권 보내드립니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두 권을 사서 한권은 제가 보고

                                          한권은 보내드립니다.

                                          그럼 후일에 다시 연락드리겠읍니다. 건강하십시오.

                                                          1990. 4. 12.

                                                                                               안 문석 올림

 

 

 

 

올해가 2018년 이니 28년 전에 쓰인 편지다. 지금은 읍니다.’라고 쓰지 않고 습니다.’로 쓰는데 그 당시는 그렇게 쓰던 기억도 새롭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반증이겠지. 책을 들고 책상에 앉자 한참을 그 시절을 생각해 보았다. 안 문석사범, 신 진식사범, 꽤나 나를 따르던 친구들이다. 나이 차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되지만 합기도란 무술을 나에게 배웠던 친구들이다. 그 당시 그들에게 합기도란 무술을 가르칠 때에는 두려울 것이 없던 청년이었는데, 이제는 노인이 되었다.

 

 

 

 

객지생활 시작을 하던 4~5년 동안은 생일날 잊지 않고 챙기던 친구들이다. 이제 그들도 아마 오십 중반에서 후반의 나이가 안 되었을까? 보고 싶은 친구들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 생활에서 잊고 지냈던 시간들이고 잊고 지냈던 사람들이다. 신 진식사범은 홀어머니라 일찍 결혼을 했었고 안 문석사범은 이 책을 보낼 당시에 직장 초년생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이었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였으면 하는 마음으로의 기도 한다. 글쓰기를 마치고 잠시 눈을 감았더니 하얀 도복을 입고 뛰는 모습이 보이고 힘찬 기압소리가 귀전에 들리는 듯하다. 혹이라도 이글을 본다면 연락을 해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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