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속의 작은 정원

참된 사랑은 제 생명을 바치는 것

心田農夫 2021. 2. 17. 18:09

                                        시 짓는 법을 몰라도 시와 연애만 한다면

                                        시의 참뜻을 알 것이요. 시 짓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시와 결혼한다면 불구가 아닌 담에는 절로 시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를 낳기까지는 괴로움이 있다.

                                        시를 낳은 다음에는 즐거움이 있다.…

                                        시를 사랑함에 무슨 이익이 있는가.

                                        참된 사랑은 제 생명을 바치는 것이다.

                                        사랑으로 해서 이익이 있다면 몸은 여위어도

                                        영혼이 아름다워지는 것이리라.

 

                                                                       조지훈의 시의 원리중에서

 

 

 

 

위의 글은 동탁 조지훈이 시를 사랑에 비유하여 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참된 사랑은 제 생명을 바치는 것이다라는 데, 세속적인 사랑은 어디 그런가, 마치 장사를 하듯 유불리에 이해타산하기에 바쁜 것이 아닌가? 언제인가 방송 뉴스에 결혼을 약속하였던 한 쌍의 남녀가 파혼을 맞게 되었는데, 신랑이 신부에게 1억 원 상당의 선물을 주었는데, 파혼하게 되었으니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마담뚜(중매쟁이)가 종횡무진으로 날뛰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유명했던 이야기가 있다. 전문의 자격을 가진 의사 사위를 맞이하려면 열쇠가 최소 3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째 열쇠는 고급아파트 열쇠요. 둘째 열쇠는 고급 자동차 열쇠요. 셋째 열쇠는 의사 사위에게 병원을 개원해 주는 병원 열쇠이다.

 

 

 

 

자본주의에 찌든 저속한 인간들은 사랑을 하나의 물품처럼 소유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닌가. 상대의 모든 것을 가지려고만 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던가. 그래서 너는 내 거야하고 말하는가 보다. 그러나 대영제국의 에드워드 8세는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리고 윈저공이 되어 심프슨 부인과 사랑을 공유했고, 에리히 프롬은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고 보듬어주는 것이다. 나의 남는 것을 부족한 상대에게 채워주고 나의 부족한 것은 상대의 남는 것을 받아 메우는 것이다. 그런 사랑은 세속적인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다. 아내로 맞을 신부에게 선물을 전한 것은 사랑해서 하는 것이었다면 파혼을 한다고 하여 돌려 달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여인을 소유하기 위해서 1억 원의 선물을 주었으나 소유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돌려달라는 것이리라. 그리고 전문의 자격의 의사를 열쇠 3개를 주고 사위 삼자는 것은 사위를 사 오는 것이요. 딸을 팔아먹는 처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시 짓고 읽고 하는 것은 사랑이다. 시 지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것 같으면 시가 무슨 보람이 있으며

                                              시 지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시인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한 편의 시가 잘만 이루어지고 보면 비록

                                              그 지은 시인이 죄를 지었거나 알뜰히 사랑하던 독자가

                                              죄를 지었거나 상관이 없이 그 한 편 시가 매개한 애정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사랑이 되는 법이다. 영원히 변하는

                                              가운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시에 있다.

 

                                                                                   조지훈의 시의 원리중에서

 

 

 

시를 짓고 읽고 하는 것이 사랑이다.”라고 동탁 조지훈은 말한다. 그리고 시인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시와 시인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긴 말일까?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그렇다면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시인이 되면 사랑을 하게 되는가? 사랑해보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다. 늦은 나이에 중매로 결혼했다. 연애의 애틋한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래서 시를 짓고 읽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 왕권마저도 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랑 해보고 싶다.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멋지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다. 그래서 단 하나뿐인 생명까지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는 참사랑을 이 생명 다하기 전에 그런 사랑을 딱 한 번만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