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속의 작은 정원

어진이가 되어 보리라

心田農夫 2006. 12. 3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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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어른의 가르침을 마음에 담으며


 

상품(上品)의 사람은 가르치지 않아도 착하고,

중품(中品)의 사람은 가르친 뒤에 착해지고,

하품(下品)의 사람은 가르쳐도 착해지지 않는다.


가르치지 않아도 착한 사람이 성인이 아니고 무엇이며,

가르친 뒤에 착한 사람이 어진이가 아니고 무엇이며,

가르쳐도 착해지지 않는 사람이 어리석은 자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것으로 보건대

착한 것은 길한 것을 말함이요,

착하지 못한 것은 흉한 것을 말함이다.


길한 자는

눈으로는 예가 아니 빛을 보지 않으며,

귀로는 예가 아닌 소리를 듣지 않으며,

입으로는 예가 아닌 말을 하지 않고,

발로는 예가 아니 땅을 밟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 착하지 않으면 사귀지 않고

물건이 옳은 것이 아니면 취하지 않는다.


어진사람을 친히 하기를  마치 지초(芝)나

난초 있는 곳에 나가는 것처럼 좋아하고 ,

악한 것을 피하기를 마치 뱀이나 지네처럼 두려워한다.


                        이이의 『격몽요결』 중에서


 

 


주워졌던 

삼백 육십 삼일이 하루 이틀 영원 속으로 사라지더니,

이제 마지막 이틀마저도 영원히 흑암 속으로

조용히 자취를 감추려고 한다.


사라진 삼백 육십 삼일에 대하려 생각을 해 보면서

일 년이라 칭하는 삼백 육십 오일의 마지막

오일 째의 한날을 보내려 한다.


도대체 그 많은 날들을 무엇을 하면서 보냈던가?

자신에게 자문을 해보지만

딱히 내새워 한 말이 없는 것은 왜일까


값없이 주어졌다고 생각을 하면서

안일하게 보냈던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본다.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결코 값없이 주어졌던가,

그것은 정녕아니리라


강물을 보고 있자면 언제나 똑 같아 보이지만

결코 어제의 물은 아니지 않는가,

어제의 물은 흐르고 흘러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변화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은 사라진 시간의 대가만큼의

주어진 변화가 있었던가?


이제 가버린 세월이야 어찌하겠는가.

위의 이이선생의 말씀처럼

다가오는 새로운 삼백 육십 오일은

배움에 정진하여 착해지고 어진이가 되어보리라


그래서 신이 주신 삼백 육십 오일을

보람차고 알차게 보내도록 노력해 보리라.

 

          저무는 한 해의 언저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