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心田農夫 2007. 7. 17. 14:34
 

나는 어제 늦은 아침식사를 직장에서 하면서

TV에서 한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사건의 내용은 이러했다.


여고생이 선생님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데

대하여 격분하여 삼층 교실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TV에서 전하는 것을 옮겨보면

평소에 A학생이 결석을 자주했다는 것이고

그 때에 반성문을 보니, 결석을 하여 피자집 등을 전전하면서

놀았다고 써있었다.


학생의 반성문이 화면에 비추이는데 순간이라 자세한 것을

볼 수는 없었고 피자집이란 글을 보는데 반성문의 화면은 사라지고 말았다.

정황으로 보아 전에도 자주 무단결석을 하고는 놀려다녔던 것 같았다


그런데 몸이 약했던 학생이 이번에는 건강을 위하여

수련원에 다녀오느라 결석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른 학생이 무단결석을 하고 선생님에게 문책을 당하면서

왜 자신만 야단을 치느냐, A도 결석을 하고 놀려다녔는데 하고

고자질을 하여서 학교에 나온 A학생을 불러서물으니


A학생은 수련원에 다녀왔다고 말하고

선생님은 거짓말을 한다고 야단을 치고 반성문을 쓰게 하였다.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고

무안을 준데 대하여 많은 자존심이 상하여


다음날 아침에 등교하여 교실에서 친구의 의자를 가져다

올라서 친구들이 보는데서 뛰어 내렸다는 것이다.


병상에 얼굴을 가린 채 인터뷰하는 학생의 말이 이러했다,

“ 결석 후에 학교에 가니 자신의 자리인 책상을

   선생님이 없애버렸고 그래도 잘못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아직까지 그러한 말을 

   선생님이 하지를  않은데 서운해요


역시 선생님도 얼굴을 가린 채

“ 책상은 없애 것이 아니라 A학생의 책상이

    뒤 자리에 있는데, 학생이 안 나오니

     쉬는 시간에 그 자리에 모여서

     까불며 장난을 치기에 사고의 위험도 있고

     하여 뒤에서 가져다 교탁 옆에다 붙여놓았다. “

    그러고는

“ 어떻게 그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에 A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교탁 옆에는 헌 책상이  의자도 없이

   놓여 있었다.  ’


그리고 A학생의 어머니도 선생님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마이크 앞에서 토로했다.


이것이 내가 회면을 통해서 보고 들은 것이다.


항상 교육에 대하여 생각이 많은 나로서는

그 취재를 보면서 ‘휴’하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는 방송국처럼 일방적으로 학생의 편에 서서

사건화 시키고 시청률을 의식한 편파적인 입장에

서고 싶지가 않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단지 어떻게 저런 일이 우리의사회에서

더구나 배움의 터인 학교에서

일어날 수가 있는 지 이해가 안 될 뿐이다.


내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이렇다.


① 건강을 위해여 수련원에 가려고 한다면

   부모님과도 상의를 했을 것이고 학교에 정식으로

   결석하는 이유를 사전에 밝히고 절차를 밟고

   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② 학교에서나 선생님은 결석을 하면은 가정으로

   연락은 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 연락을 했다면

   학생의 말에 진실여부는 판단이 되지 않았을까?


③ 화면의 상황으로 미루어 선생님은 여선생님인 것 같았고

   때려다는 말은 없었던 것으로  보아 단지 자신을 말을 믿어주지

   않고 반성문을 쓰게 하였다고 배움의 단계에 있는 학생으로

   그렇게 생명을 쉽게 다룰 수가 있을까하는 것이다

  (학생은 인터뷰는 했지만 현재 병원에서 대소변을 받아내는 중태인모양이다)


④ 선생님이 잘못 했다는 말 한마디 듣고 싶다는

   것이 학생이 원하는 것인데, 사건의 전후야 어떻게 대었건

   내가 다친 것은 선생이 안 믿어 주어서 이렇게 되었으니

   사과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잘못 했다는 말 한마디 듣고 싶어요.  ”하는

   생각의 발상이다. 이것이 학생의 신분인지 이해가 안 된다.


⑤ 방송국의 처사다. 치료비를 대주지도 않고

   어떻게 학교와 선생님이 그럴 수 있냐는 멘트다.

   취재 중에 학생의 반성문을 보았을 것이고,

   그 학생이 평소에  결석이 많았고 반성문에

   무단결석을 하고 놀려다녔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도

   알면서도 무조건적으로 학교 측과 선생님만 잘못했다고

   하는 방송국의 편파적인 방영이 이해가 안 된다


요즈음 교실의 선생님에게

징계의 권한을 주자는 내용이

사회전반에 화두가 되어 각 방송국에서

찬반의 토론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의 교육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심히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내 자식만 최고이여야 하고 내 자식만 일등이여하고

내 자식은 남과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다.


언젠가 우리 점포에 손님으로 오신 선생님의

한 마디가 생각이 난다.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부모님들 돌아가면서

  1일 교사되어 교실의 현실을 체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자신들의 입장을 이해 할 것이다“


그 날 푸념에 가까운

그 선생님의 말씀이 각설이가 하는

각설이 타령처럼  왜, 그리도 처량하게 들리든지,


나도 두 딸아이를 학교에 보낸다.

나는 일단 학교에 보내는 입장에서

학교생활에는 전적으로

선생님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그러한 나의 입장을 매년 신학기만 되면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에게 편지를 하고는 한다.


아이가 입학하여 작년까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전반기에 어려운 집안일에 편지를 못했다.

 

방학을 앞두고 어제 딸아이의 담임선생님들에게

한 학기동안 귀한 가르치심에 감사하다는 글을 드렸다.


이제 중년의 나이에서 지난날의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참 풋풋하고 생기가 느껴지고 새삼스러운 감동이 주어지는데


학부모의 한사람으로서 너무도 변하여 가는 현실의 교육이

안쓰럽고 걱정이 되어진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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