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아두기

비움을 아는 지혜

心田農夫 2007. 11. 1. 11:15

한 팔을 잘라 믿음의 표시를 보이고서야

겨우 입문을 허락받고 각고의 수행을 하던

혜가(慧可)가 하루는 스승인 달마 스님을 찾아갔다.

 

“그래, 무엇을 구하는가?”

“제 마음이 심히 편치 않습니다.”

“그래, 편치 않은 그 마음을 어디 가져와 봐라.”

“찾으려야 찾을 갈이 없습니다.”

“내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펴케 했노라.”

 

혜가는 이 말씀에서 깨달음을 얻고 마음을 쉬었다.

                                   (행복한 마음) 중에서

 

 

 

어찌 보면 너무도 평범한 대화인 것만 같다.

그러한 평범하기만 한 대화에서 스승의 말씀에서

믿음을 갖질 수 있는 마음이 깨달을 얻은 것은 아닐까?

 

국어사전을 보니

 

깨달음

명사진리나 이치 따위를 생각하고

궁리하여 알게 되는 것. 이라고 나와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진리에 대하여 배우기도 하고

이치를 배우고 알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많은 좋은 말씀을 듣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책을 통하여 얻기도 하지만,

 

왜?

깨달지를 못하는 것일까?

실천이 없어서가 아닐까?

 

같은 책(행복한 마음)에서 보니

한 제자가 부처님께 빨리 도통해서

열반에 이르는 방법을 물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다.

첫째도 실천, 둘째도 실천

셋째도 실천이라고,

 

그럼 어떠한 실천일까?

이러한 실천은 아닐까?

비움이라는 실천이 아닐까?

 

살아가면서 우리는

움켜잡으려고 하기만 하고

내놓으려고 는 않는 것 같다.

 

나는 동물학자는 아니지만

동물들은 배가 고파 사냥을 하고

사냥을 해서도 자신의 배만 채우면

그것으로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에나 같은 동물들은

그러한 남은 먹이로 다시 배를 채운단다.

 

우리 인간들은 적당히

채우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필요 이상 가지려고만 한다.

 

어찌하다 더 많은 것을

갖게 되었다면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 비움이 중용사상(中庸思想)은 아닐까?

 

어느 쪽이나 치우침이 없이 온당한 일,

또는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알맞은 일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게 유지할 수 있는 지혜

 

그것이 중용을 아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닐는지,

 

그 중용과 깨달음에 대하여

나는 나 나름대로 비움이라 생각을 해 본다.

 

새로운 한 달을 새로이 맞이하면서

이 한 달을 어떠한 것으로 채우고

또 비워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이아침에 새로운 삼십일을 시작 해본다.

 

'마음에 담아두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을 어찌 멀리서 찾으리오  (0) 2007.11.05
행복이란 무엇일까?  (0) 2007.11.03
마음은 마음일 뿐인데  (0) 2007.10.31
부덕(不德)의 소치(所致) 올시다.  (0) 2007.10.29
아주 조금만 천천히  (0) 2007.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