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하여 생각하기

누구를 위한 교육정책인지

心田農夫 2008. 11. 3. 13:03

나는 교육에 대하여,

또한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역시 그리 잘 알지를 못한다.

 

그래서 또다시

교육학이란 새로운 학문을

시작하게 된 동기의 하나라고 해도

그리 잘못된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춘기 속에 있는

두 딸의 아버지로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 인생길의

이정표가 되기 위해서 교육학을 선택,

전공하고 있고 이제 마지막 한 학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그 정책을 담당하는

수장의 자리가 바뀔 때마다

 

수시로 바뀌고 있고,

나와 같은 학부모들과

당사자인 학생들은 그 정책이

바뀔 때마다 찬반으로 나누어

그 정책이 옳으니 그르니 하면서 편이 갈린다.

 

나라님은 온 국민

화합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데,

그 밑의 교육의 수장들은 보이지 않는

삼팔선을 만들어놓고 양쪽으로 갈라놓는다.

 

오늘도 들으니,

국제중학교의 신설에 대하여

패널들이 두 그룹으로 나누어

토론을 하는데 냉기를 사이에 두고

조금도 자신의 주장을 굽힐 줄을 모른다.

 

또 하나

우리나라의 명문대라는

한 대학교에서는 수시입학의 기준을

자신들의 편의해 의한 자신들의 자대로

재 멋대로 재어 합격 불합격의 판정을 하여

사회를 시끌시끌하게 만들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대한 자세한 해명이나, 적용한 기준에

대하여 당당히 밝히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교육을 잘 모른다.

또한 교육정책에 대하여도 잘 모른다.

그러나 교육학을 선택 공부 하면서

배우고, 느끼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배움의 당사자인 학생들을 위한

교육정책이 세워지고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과 보름 전에는

보류라는 결정을 해놓고는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인가인지 허락인지 했다는 교육위원회들,

 

도대체가

교육(敎育)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고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 하는

말의 뜻이나 알고 교육위원회 자리에 앉자 있는 것인지

어떻게 백년의 대 계획을 손바닥 뒤집듯 보름 만에 뒤집으시나

 

페스탈로치, 몬테소리,

발토르프 프뢰벨 등과 같이

진정 학생을 위한 교육을 하는 교육자

학생들을 위한 교육정책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담당자들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게 된다.

 

율곡 이이는 자신의 저서

「격몽요결」에서 교육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반드시 글을 읽고 이치를 궁리해서

자기 자신이 마땅히 행해야 길을 밝혀야 한다.

그런 뒤에야 조예(造詣)가 정당해지고 행동이 올발라진다.“

 

내가 배운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가치 있는 상태, 즉

인간다운 인간의 상태를 실현 하는데 있다“고 배웠다.

 

언제나 우리 내 교육이

인간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고

인간다운 인간을 만드는 교육이 되려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답답한 마음에

알지도 못하는 교육에 대해 두서없이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