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속의 작은 정원

속으로 한마디 했다.

心田農夫 2009. 3. 20. 18:21

눈을 감는 사람들

 

                        박 희 경

 

사람들의 몸이 고정되고

입구 열리는 소리에

앞으로 집중되는 시선들

 

새하얀 머리에

굽은 허리가,

그 허리가

힘겹게 올라온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서

스스로 장님이 된다.

마음을 닫는다.

 

흔들리는 버스에

서리 내린 머리가,

구부정한 허리가

애처롭던 몸뚱어리가

내려진 후에

 

겨울잠 깬

개구리처럼

차 안에 생기가 가득.

 

그러나 그때

마음 한구석에선

응어리가 맺힌다.

 

‘내가 왜 그랬을까?’

 

많은 사람들이

아마 시인과 같은 일을

한 번쯤은 격어 보았을 리라.

 

그리고 때로는

그 반대의 경우도 겪어 보았으리라.

일을 하다 피곤하여 잠시 펴들었던 시집에서

시를 보고는

저번에 보았던 풍경이 떠올라 적어본다.

 

저번 서울에 갔을 때

지하철을 타고 경로석 좌석

옆 파이프기에 등을 기대고 시집을 보고 있었다.

 

전철이 한 역에 멈추어 서자

입구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다 내리고

한 팔십쯤으로 보이는

백발의 어르신이 타셨다.

 

중절모에 코트를 단정이 입으신

멋있는 모습의 점잖아 보이는 노신사였다.

 

타시자마자 경로석을 걸어오시니

앉아 계시던 육십 후반 쯤 보이는

아주머니가 얼른 일어났다.

 

멋지게 보이던

그 어르신 당연하다는 듯

한 말씀도 없이 그 자리에

앉으시고는 지그시 눈을 감으신다.

 

함구무언(緘口無言)이여

                 묵묵부답(黙黙不答)이다.

한 마디,

   ‘고맙구려,’

   ‘괜찮은데,’

   ‘미안합니다,’

             말씀 하셨으면,

 

일어나신,

결코 젊지만 않으신

양보하신 분에게

작은 행복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사람을 겉모습을 보고

판단을 해서는 안 되겠구나 생각을 하며,

‘예의를 모르는 노인네 같으니,’

속으로 한마디 했다.

'텃밭 속의 작은 정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아리 되어본다  (0) 2009.07.24
담박(澹泊)한 시인의 시혼(詩魂)  (0) 2009.05.01
되새김질  (0) 2009.03.11
낙엽되어 떨어지는 무오년  (0) 2008.12.31
아름다운 만남을 기다려 본다.  (0) 2008.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