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속의 작은 정원

담박(澹泊)한 시인의 시혼(詩魂)

心田農夫 2009. 5. 1. 17:59

아기 노루

 

아기노루가

길을 잃었네

 

함박눈이 쏟아져

앞이 안보여

 

눈은 쌓이고

길은 묻히고

 

엄마를 부르며

해매다 보니

 

산기슭에

외딴집 하나

 

아기 혼자

낮잠을 자네

 

쌔근쌔근

아기 노루도

 

나란히 누워

낮잠을 자네

 

밖에는 펑펑

눈이 내리고

 

소리

 

사각사각 창밖에

싸락눈 오는 소리

살랑살랑 잔바람

마른가기 흔드는 소리

옹알옹알 방 안에

우리 아기 잠꼬대 소리

새액새액 땅속에

애벌레 숨쉬는 소리

나비 꿈을 꾸면서

애벌레 숨쉬는 소리

 

 

추운별

 

엄마

별이 추운가봐

창문으로 들여다보며

자꾸만

들여보내달라는 걸 보면

아가야

눈을 꼭 감으렴

별들이 네 꿈속으로 들어와

따듯하게 따듯하게

잠들게 하렴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할머니가

두부 일곱 모 쑤어 이고

일곱 밤을 자고서

일곱 손주 만나러

 

한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길 잃고 밤새 해맨

아기노루 먹으라고

 

두 고개 넘어섰다

또 한 모 놓고

먹이 없이 내려온

다람쥐 먹으라고

 

세 고개 넘어갔다

두부 한 모 놓고

알 품고 봄 기다리는

엄마 꿩 먹으라고

 

네 고개 넘어섰다

또 한 모 놓고

동무 없어 심심한

산토끼 먹으라고

 

다섯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눈 속에서 병든

오소리 먹으라고

 

여섯 고개 넘어섰다

또 한 모 놓고

외로워 짝 찾는

산비둘기 먹으라고

 

일곱 고개 넘어서니

일곱 손주 기다리는데

두부는 안 남고

한 모밖에 안 남고

 

우리 아기 깰라

 

바람도 가만가만

들판을 가만가만

우리 아기 깰라

창밖을 가만가만

 

달님도 가만가만

구름 속을 가만가만

우리 아기 깰라

그림자도 가만가만

 

기차도 가만가만

철길을 가만가만

우리 아기 깰라

철교를 가만가만

 

 

쿨쿨

 

 

땅속에서는

개구리가 쿨쿨

굴속에서는

아기 곰이 쿨쿨

지붕에서는

아기 참새 쿨쿨

방안에서는

우리아기 쿨쿨

 

겨울잠

 

잠자면서 쑤욱쑤욱

꿈꾸면서 쑤욱쑤욱

곰돌이도 쑤욱쑤욱

개구리도 쑤욱쑤욱

참나무도 쑤욱쑤욱

눈사람도 쑤욱쑤욱

모두모두 쑤욱쑤욱

잠자면서 쑤욱쑤욱

 

 

위의 동시는

신경림 시인의 「낙타」실려 있는 동시 일곱 수다.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동심으로 돌아가고만 싶다.

마음에 편안함과 아늑함이 다소곳 쌓이며

온유하고 다정함이 사르르 녹아드는 느낌이다.

시인의 시혼이 샘물처럼 맑고 투명함을 가져다준다.

 

 

읊어보면 읊어볼수록

자연으로 돌아가고파 진다

마음에 신선한 이슬이 방울방울 담겨지며

담겨있던 번뇌가 한 올 한 올 씻기는 느낌이다

시인의 시혼이 눈처럼 순백의 깨끗함으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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