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가을에 다가온 화두

心田農夫 2009. 9. 21. 21:07

일요일,

여느 날 같으면

그저 평온히 책도 보고 TV도 보면서

한주일의 쌓여 던 피로를 풀면서 보냈으련만

 

후배의 떠남은

가을을 몹시도 타는 나에게

중년의 나이도 잊은 채

이십대의 화두였던 ‘삶과 죽음’에 대하여

다시금 마음에 담게 한다.

 

안방에서

TV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공부방으로 건너가 이 책 저책 뒤적여 보아도

그 역시 답답한 가슴을 풀어주지를 못하였다.

 

그리 좁지 않은 집이지만

왜 그리도 좁고 답답하게 느껴지는지,

가슴은 조여오고 갑갑함에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대낮이지만 맥주라도 한잔하고

낮잠이라도 자고 나면 좀 낳아지려나. 하고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사다 놓은 맥주는 없었다.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이 방 저 방 왔다 갔다 하다가

바다나 보면 시원해질까 생각을 했지만

혼자 어디를 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성격 탓에

생각에 그치고 있으려니

 

그 무엇인가가

가슴을 넘어 목구멍까지 치밀고 올라와

정말로 미칠 것만 같아 차키 집어 들고 집을 나섰다,

 

막상 집을 나서서 시동을 켜면서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을 해보니 딱히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오어사에 가 오어사 주변에 자리한

넓은 저수지 따라 걸으면서 화두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가본지가 하마 오래 되었고

한 시간 가량 운전을 하여야 하다는 것과

길치다보니 혹시 헤매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어

지금의 기분으로는 왠지 내키지가 않는다.

 

그러다 그래

18일 날 개항을 한

영일만 신항만이나 한 번 가보자 싶어서

차를 그리로 향했다.

 

20여분 달려서 도착하여 보니

날씨가 맑아서 일까

너무도 많은 차들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쪽 곁에 차를 세우고 내려보니

신항만 앞 먼 바다 한 가운데

빨아간 등대가 눈에 들어온다.

 

 

 

 

거기 까지 걸어가 보기로 마음먹고

혼자 터덜터덜 걸어서 가다 보니

그 방파제 길 따라 많은 사람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낚아 올린다면

아마 저 바다 속에 고기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걸으면서 혼자 바보 같은 생각을 해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멀리 보이던 빨간 등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 가운데 우뚝 서있는 빨알간 색의 등대

등대 위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떠있는 구름들

간간히 나는 갈매기들

솜씨 있는 화가가 그려 놓은

한 폭의 그림인양

가을이란 계절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것만 같다.

 

 

 

 

그 아름다움을 보고 있노라니

답답히 막혀있던 마음이

한 꺼풀씩 베껴져 파도를 타고 먼 곳으로 사라진다.

등대를 한 바퀴 돌다보니

그 아름다운 등대에 낙서를 한 것이 보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그 이름을 남긴다 하였던가?

아마 그 낙서를 한 사람도 자신의 이름을

그 어디엔가 라도 남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낙서를 보다 보니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십 여년 살아왔던 이 땅에

후배는 무엇을 이 세상에 남겼을까?

그리고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또 하나의 화두를 등대 뒤로 남겨 놓은 채 발길을 돌린다.

 

신향만을 뒤로 하고

신항만에서 한 15분 걸리는 거리에 있는

흥해 암각화를 보러갔다.

 

 

 

 

이정표를 보고 올라가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초등학교 5~6학년 쯤 보이는 소녀와 어머니

그리고 또 한분의 아주머니가 올라오시는데,

어린이와 어머니에게 암각화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을 하기에 옆에 서서 귀동냥을 하다가

 

 

 

 

“고고학을 전공하셨습니까?”물으니

“포항 문화유산 해설사입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도 보고

그 궁금한 것에 대하여 설명을 듣다보니

참 새삼스러웠다.

 

 

 

 

지금은 산 속에 묻혀있는

커다란 바위에 지나지 않지만

그 옛날에는 이곳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해설사님의 말씀은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한 바위에 그려져 있는 것이

여성의 성기를 표현해 암각 했다는 것과

스물아홉기가 그려져 있다는 설명을 해주신다.

 

 

 

 

그리고 그것이 여성의 성기의 모양이

암각 되여 있다는 학설이 맞는다면

이곳이 신성시 되었던 장소일 것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처음 왔을 때는 지금보다도

아주 선명하게 보였던 암각들이

이제는 풍화작용으로 인하려 희미해 졌다며

안타까움을 표하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

굽이굽이 이어진 차도 변

나지막한 산자락에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가을이 이렇게 왔노라고 한들한들 소곤대는 갈대들,

 

 

 

 

길옆에 차를 새워두고

잠시

바람결에 속삭이는 갈대의 갈바람소리 귀에 담고

 

 

 

 

다시 달리다 눈에 들어오는 아담한 차집

그 차집에 차를 세우고 들어서

국화차 한 잔 주문을 하여

찻잔에서 은은히 피어오르는 가을 향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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