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잘 가래이

心田農夫 2009. 9. 19. 11:18

 

겉으로 보면 멀쩡하게

신사복 차려 입고는

술에 취한놈처럼 흐느적거리며

먹거리와 차가 있는 곳

“비꽃”으로 문 열자마자 찾아든다.

 

아침부터 웬일이세요?

먹다 남은 맥주 있으면 좀 주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그냥 술이 먹고 싶어서

그럼 내가 대접해야지,

잠시 앉아 기다려요. 하고는

 

차타고 슈퍼로 가는 주인장을 보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비꽃”의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지난 일을 더듬어 본다.

 

조금만 잘못을 하면

그냥 못 넘기고 야단을 치고 꾸짖어도

언제나 깍듯이 선배대접을 하던 후배

체격으로 보면

고목에 붙은 매미에 불과한 네가

단지 인생을 조금 먼저 태어나 조금 더 살았노라고

매미가 고목에다 대고 큰 소리를 치며 지내왔다.

 

일보러 가다 가게 앞을 지나는 길에나

살다 살다 그 삶이 힘들어 지쳐을 때마다 들려

차 한 잔 달라면 이런 저런 넋두리 늘어놓던 후배

명절 때가 되면

언제나 선물 들고

명절 잘 지내라고 인사를 왔던 후배.

 

이제 생각을 해보면 늘 받기만 하고

무엇하나 들려 보낸 적이 없고

힘들어 왔을 때도 무슨 도움 한번 준적이 없다.

 

병문안 한지 이틀 후

서울을 향해 가던 고속버스 안에서

친구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받았다.

 

“힘들게 전화번호를 알아 전화 합니다.

혹시, ○○○이 소식을 아십니까?”

“그제 보았는데요, 무슨 일 있습니까?”

“그제요?”

“네, 병문안 갔다 왔는데, 혹시?”

“아니, 아직은 괜찮은데, 다시 중환자 실로 옮겨 습니다.

그래서 영정사진을 준비하려고 하니,

저에게는 사진다운 사진이 없어서 괜찮은 사진이 있으신가하여”

“그럼 네가 지금 일이 있어 서울 가는 중인데

모레 쯤 전화 주시면 좋겠습니다.”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병문안 갔을 때 그래도 의식도 있고

시골로 가서 요양을 하고 싶다는 말도 하고

몸조리 잘하라는 말을 하고 나오는 우리에게

양손을 들어 이마에 대고 경례를 하던

그가 그렇게 빨리 가리라고는 생각을 안했는데,

 

의사가 말하던 그의 천명 열흘

그 열흘도 다 못 채우고 이 지구를 떠나고 말았다.

 

떠나는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 없었다.

말없이 누워있는 그와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으려고

검은 양복입고 저녁마다 들리는 것과

출상을 하는 뒤 모습을 보고

이승을 떠나 무한한 우주로 가기위해

몸을 한 줌의 재로 바꾸는 모습까지 보고는

눈물을 감추며

 

“한 사장, 잘 가래이”

 

한마디 허공에 뱉고는 돌아서서

손수건 꺼내 눈을 비비며

바로 “비꽃”으로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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