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물어보시오. 소크라테스에게,

心田農夫 2009. 9. 25. 17:13

 

우리 사회는

또 다시 청문회의 돌풍에 휩싸이고 있다.

아니 그 청문회 때문에

모두들 자신의 역할을 잊고 도덕 불감증이라도 걸린 듯하다.

 

올 7월14일에 나는

“다산 정약용, 무어라 말씀하실까?”제목으로

청문회에 대하여 난필을 들어 쓴 글을 블러그에 올린 적이 있다.

이번에 다시 청문회를 한다고 하기에

이번에는 ‘혹시나’그런 인물은 아니겠지 했는데,

‘역시나’똑같은 범법자들이였다.

 

그런데 고위 공직의 지명을 받은 후보자들도 문제이지만,

더욱이 심각하고 한심한 것은

우리나라의 지식층이요, 학자란 양반들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저런 수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전 모 방송국의 토론을 밤늦게까지 시청을 했는데.

학식 있고 식견이 있다는 현직 대학교의 교수들이 하는 이야기가

너무도 실망스럽고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토론의 주제는

“고위직 인사검증, 문제없나” 이였고

패널로 참석한 분들의 직함을 보면

강 ○○

○○대학교 법대 교수

홍 ○○

○○대 행정대학원장

손○○

한국NGO학회장

김○○

시사평론가

등 전문가라는 네 사람이 참석하여

도덕성에 대하여 100분간의 열띤 토론을 벌렸다.

 

강 교수, 홍 대학원장 두 분은

현제 임명된 분들에 대한 위장전입, 논문위조, 병역문제 등에 대하여

그 정도의 흠은 그분들의 능력에 비하여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손 학회장, 김 평론가는 법을 위반 한 사람이 고위공직자가 되어서

어떻게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강 교수와 홍 대학원장은

현재 대학교와 대학원에서후진을 양성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즉 학생을 가르친다는 사람들이

“위장전입이 범법을 한 것이요 위법이지만,

자녀의 교육을 위한 악의가 없는 위장전입 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괜찮다는 것이고, 역으로 우리 국민 중에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도로교통법 위반하지 않는 사람 있느냐고 묻는다.”

 

법을 가르친다는 교수가 위법이다, 범법이다.

말하면서도

위장전입을 도로교통법에 비유를 하지 않는가하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도로교통법들 위법을 했으니

고위 공직자로 지명을 받은 사람들도 그 정도는 괜찮다하고

그리고 악의(惡意) 없는 것이니 그 정도의 흠이 있다고

고위 공직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그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저 양반들 제자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는 지

그 교수의 강의 한 번 듣고 싶어진다.

혹시 정신조금 이상한 것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까지 든다.

 

우리 한번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위장전입이 악의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하여.

 

우선 위장전입을 하려면 옮기는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현제 주소에서 어디로 옮길지를 생각하여 정하고 나서야 옮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인을 한 살인자의 형량을 판사가 언도할 때도

우발적으로 살인을 했느냐 아니면 계획적으로 살인을 했느냐에 따라서

그 형량의 차이는 크게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우발적 살인은 살인 할 의사를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고

순간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정상을 참작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정전입이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했다고, 악의가 없다.”

가정하여 살펴보자.

 

A라는 학교에 보내려고 한다고 하자.

우선 부부가 아니면 한 쪽 부모라도

우선 자식에게 A라는 학교에 대하여 말을 했을 것이고

자녀는 찬성을 하던 반대를 하던 의사를 표하였을 것이고

그러므로 위장으로 전입을 하여 그 곳에 다녔을 것이다.

 

위에서 말했지만

살인이라는 범법도 순간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냐

계획된 것이냐가 죄의 경중(輕重)이 다른 것처럼

 

위장전입은

순간적으로 단순히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철저히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위장전입을 한 것이고

사전 모의하여 저지른 범법이고 중범죄(重犯罪)인 것이다.

 

엄밀히 따진다면 임명된 후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가족이 함께 공모를 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장전입을 하므로 말미암아

그 학교에 가야하는 선량한 한 사람의 권리를 강제로 빼앗는 것이고,

그로인해 한 학생의 일생이 그 임명된 후보자의

자식 때문에 일생이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 자식을 위해서는

다른 부모의 자녀의 앞길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는

행태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악의가 없다.

 

법을 가르치신다는 강 교수님

악의가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법을 가르친다는 인간이 어찌 그렇게 무식한 말을

그것도 공중파 방송에서 뻔뻔히 할 수 가 있는 것인지,

그러니 불범으로 돈 처먹고도

정치자금이다. 대가성이 없었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고위공직자로 지명된 인간들

하나같이 위장전입이다 논문위조, 탈법, 등하는 인간들

혹시 그런 인간들 그 교수의 제자 아닌가. 몰라?

 

그리고 더욱 가관인 것은

홍 대학원장이라는 교수인가, 대학원 원장인가 하는 인간이다.

 

위장전입, 논문위조, 병역기피, 탈세, 이런 것 저런 것 다 따지면

대통령과 코드 맞는 사람 없다. 그리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악의가 없기

때문에 이해한단다.”

 

“어이, 홍 대학원장 언제 물어보셨나요? 국민들에게,

 

참으로 국민들을 우습게 보는 수작이라고 할 수 밖에 없소.

어찌 우리 국민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요,

민초라 그저 밞으면 된다고 생각을 하시는 것이요?

 

흠, 없고 떳떳한 사람이 없다 그러니 흠이 있어도 괜찮다.

그것 어디서 주워온 논리요.

 

지명권자인 대통령하고 코드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하고 코드를 맞추어야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자기 자신들의 이기주의를 위해서

남에게 피해주는 인간들 말고도 넘쳐나는 것이 우리나라의 인제들이요.

당신같이 인간이 당신 같은 눈으로 보니

훌륭한 인재가 보일 리가 있소.

 

옛말에 “○눈에는 ○만 보인다.” 하지 않았소.

 

당신 말대로 장관의 임기가 일 년 밖에 안 되니

전문성만 갖추어지면 그 정도의 위법을 해도

장관도 총리도 적격하다고 하시는 교수님

이렇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위장전입에 논문위조 병역기피 등등

자격도 안 되는 인간들을 장관이나 총리로 억지로 쓰니

그 임기가 일 년의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안소.

 

홍 교수님,

정치가 무엇인지나 알고 있소,

내 간단히 가르쳐 드리리다.

 

정치란 안거낙업(安居樂業)이 되어야 하는 것이요.

정치가들이 정치사상으로 지향해야 하는 것이

안거낙업(安居樂業)이여야 하고.

공자가 펴려고 했던 것도 안거낙업이요

 

그 어떤 정치사상도

안거낙업이라는 간단한 이론을 벗어 날 수는 없는 것이요.

즉 국민들이 삶을 살며 자신의 생업에 임하면서 근심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안거낙업인 것이 웨다.]

 

하나 더 가르쳐드리리다.

노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강의료 안 받고 공짜로,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은 민생안정인데 그 민생안정을 위해서는

노자는 이렇게 말을 했소.

 

노자 왈(曰),

무위지치(無爲之治) 라

즉 무위지치란 지도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요.

이른바 무위(無爲)의 치(治)를 해야 최고의 지도자요, 최고의 다스림이 되는 것인데,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시끄러워서야

어찌 무위(無爲)의 치(治)를  실행 할 수 있단 말이요.

 

그리고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이르기를

爲政之要는 曰公與淸이요,

成家之道는 曰檢與勤이니라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공정함과 청렴함이요

집안을 이루는 도리는 바로 검소함과 부지런함이다.

명심보감에도 정치에서 중요한 것이 공정함과 청렴함이라 했거늘

 

지금의 후보자를 보면

공정함이나 청렴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이라는 생각이 안 드시오.

 

청문회가 무엇인가?

임명받은 후보자가 고위 공직자로서 맡을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검증, 즉 시시비비를 따져보다는 것이 아니던가?

거기에는 고위 공직자로써 국정운영에 대한 철학과 정책방향 그리고 도덕성, 자질,

능력에 관한 검증, 즉 시시비비를 가려 보는 것이리라

이 시시비비를 정확히 해야

정의로운 민주주의 사회기 이루어지기 때문이란 말이요.

 

우리사회가 청문회 할 때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토론을 위해 참석한 법학교수와 행정대학원장과 같이

학식이 있다는 사람들이 정확한 원칙에 의하여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기준이 없이 법을 어겨도 능력이 있으면 된다는 식이나,

악의가 없으니 그 정도의 법을 어긴 것은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되는 것이다.

 

추상열일(秋霜烈日),

즉 가을의 찬 서리와 여름의 뜨거운 해라는 뜻으로,

추상열일(秋霜烈日), 형벌에는 엄정하고 권위가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공정하고 준엄한 비판자가 우리에게 적다는 것이 청문회 때마다 반복되는 이유인 것이다.

 

여당의 자기편이라고 감싸고,

야당의 비판을 위한 비판, 이 아닌

참다운 비판으로 시(是)외 비(非)를

올바르게 가려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리라.

추상열일(秋霜烈日)이란 말처럼 공정하고 준엄한 시시비비를 가려서

고위공직자가 임명이 될 때라야 다시는 범법자 때문에 시끄러워 지지 않으리라.

 

강 교수, 그리고 홍 대학원장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수다.

 

아테네의 영원한 자유인인 소크라테스에 관한 이야기 웨다.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것을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멜레토스가 소크라테스를 기소하여 을 때

 

중견정치인 아나토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소크라테스여, 제발 철학하는 일을 그만두라 그러면 무죄로 하겠다.” 하였으나.

 

소크라테스는

“참된 명예에 대하여, 진리에 대해서, 그리고 고매한 영혼대해서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라고 거절을 했고

결국 나중에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택하겠다고 하고는 죽음을 선택 한다.

 

이에 그의 친구 크리톤은

감옥까지 찾아와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하라고 설득을 한다.

그 당시 아테네 시민에게는 탈옥은 불명예스러운 행동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나의 갈 길을 갈 것이야, 사람들에게 평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유가 중요한 것이지, 어영부영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아름답게, 올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한 거야.”

하며 독배를 들어 마셨다.

 

그리고 흐느끼는 제자들에게

 “사람은 모름지기 조용히 죽은 것이야, 조용히, 그리고 의젓하게.” 라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죽어가면서도 빚을 갚아주기를 부탁한다.

 

“어이,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 신에게 내가 닭 한 마리를 빚졌다네.

기억해두었다가 갚아주게.”

 

이런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하여 우리들은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악법도 법이라고”

 

그런데 법을 가르친다는 대학의 법과교수가

위장전입 정도는 위법이지만

그 정도는 봐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강 교수, 홍 대학원장,

당신들이 그 정도는 봐 주어도 괜찮다고 하는

위장전입, 논문위조, 병역기피, 세금누락 등을 하고도

높고 높은 고위공직에 몸담아도 괜찮은지

 

물어보시오. 소크라테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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