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모내기, 김매기
한 번도 아니하고
나풀나풀 날개 짓하여 사뿐히 내려 앉아
통통한 알곡
톡톡 쪼아 먹는 참새가 미워서 일까
두 팔 활짝 벌려
훠이 훠이
멀리 가래이 멀리 날아 가래이
힘껏 목청 돋우는 허수아비
햇빛 주시고
비도 내리어
무럭무럭 쑥쑥 자라게 하시는 조물주에
통통한 알곡
살살 쓰다듬는 농부님 대신하는 걸까
두 팔 활짝 벌려
훠이 훠이
풍년 입네다 아주 대풍 입네다
하늘 향해 기도하는 허수아비
경상북도 포항시
그 외곽에 자리한 흥해 벌판
흥해에는 아직도 오일장이 서는 곳이다.
매 2일과 7일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일장이 선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그래도 규모가 커다란 장 이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시장의 규모가 작아지는 것이
우리의 전통 장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 만 같아
못내 아쉬움도 없지 않다.
읍내를 벗어나면
훤하게 보이는 흥해 벌판
이곳의 쌀이 나름대로 인정을 받아서
장날이면 포항시의 주민들이 쌀을 사러 오일장을 찾기도 한다.
그 흥해 널따란 벌판에서
허수아비 선발대회가 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는데
어디서 하는 줄을 모르고 있다가
일 때문에 나섰던 길에 눈에 들어온 허수아비 행렬을 보고는
차를 세우고 하나하나 찍는다고 찍다보니
다 찍기에는 갈 길도 바쁘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도
찍기를 중단하게 하였다.
발길을 돌려 다시 차를 타고 달리면서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 우뚝 서있는 허수아비들을 보면서
권모술수도 모르고, 부정부패도 모르는 저 허수아비.
묵묵히 팔 벌리고 서서
오직 참새를 쫓는다는 자신의 일만하는 허수아비
인생은 연극무대라 했던가?
우리 사회의 일원들도
저 허수아비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만 충실히 한다면
부정부패라든지, 위법행위라든지, 하는
말들도 사라지고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인생극장의 아름다운 연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발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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