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이래저래 불효자일세.

心田農夫 2009. 10. 4. 16:40

 

매번 맞이하는 명절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표현 하드라만서도

딱히 갈 곳 없어 집에서 빈둥빈둥

아까운 시간만 축내고 있다.

 

추석 명절, 한가위

남들은 고향을 찾아간다고

머나먼 고향 찾아 긴 긴 시간을

차 속에 갇힌 든 앉자 지루함에 시달려도

마음은 들뜨고 기분은 하늘을 날 듯 하다던데.

명절만 되면 외로움의 터널 속에 깊이 빠져만 든다.

 

나이 먹어감인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때마다 그냥 보낸다는 것이 왠지

못내 허전하고 쓸쓸함도 있고, 불효하는 것만 같아

제사라는 것을 한번 지내볼까도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는데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못보고 자란 탓에

제사에 어느 음식을 어떻게 준비하고

어느 시간에 어떠한 절차로 진행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 누가 격식 가릴 것 있느냐고

부모님 생존에 좋아하시던 음식 장만하여

절을 올리면 제사지, 딱히 격식이 중요 한 것은 아니라

정성 다한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 일러 주더라 만서도,

 

그 말에 용기 얻어

이제부터라도 시작하여 보려고 마음 다져먹고

 제례내용이 담겨 있는 「격몽요결」도 들쳐보고

나름대로

마음으로 준비를 한다, 해왔건만

갑자기 집사람에게 병이란 놈이 찾아와

그것도 시세 말로 물 건너가고 말았다.

 

제사라도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가지게 된 것은

어머니 돌아가시고

고향을 멀리 떠나서 살아 왔고

타향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오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곳에 모신 후에

어머니를 이곳에 이장을 하여

함께 모시겠다는 마음이 있었으나

 

어찌하다 보니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어머니와 아버지를 한 곳에

모실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고,

부득이 본의 아니게 두 분을 따로 모실 수밖에 없었다.

 

포항과 용인이라는 거리가

번갈아 가면서 성묘하는 일이 쉽지 않기에

집에서나마 어머니 아버지,

두 분 사진이라도 모셔놓고

생전에 두 분 좋아하시던 음식이나

조촐하게 차려놓고 절이라도 올릴까 했었는데,

 

어제 근교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

잠시 다녀오는 것이 다였고

멀리 용인 선영에 모신 어머니에게는 다녀오지 못했다.

 

부모님 살아생전에는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불효를 하였고

부모님 돌아가신 뒤에는

제의(祭儀)를 몰라 불효를 저지르고 있느니

부모님의 은덕으로 태어난 몸으로

이래저래 불효의 불명예를 벗을 길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