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성이 맑아지는 언어

왜……

心田農夫 2011. 5. 1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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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동 할머니

 

                                 서 정 홍

 

여보게, 자네 전화번호 좀 적어주게. 저기 농협 달력에 크게 적어 주게. 요즘 이 늙은이가 죽을 때가 되었는지 밤만 되면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진다네. 영감 일찍 죽고 이날까지 혼자 외롭게 살았는데 죽을 때는 혼자 죽고 싶지 않아. 내가 몸이 아파 전화하거들랑 미안하지만 얼른 와 주겠나? 얼른 와서 내 손이라도 좀 잡아주게.

 

자식놈들이야 많지만 제 살길 찾아 다 도시로 떠났어. 큰아들 놈은 서울에 있고, 작은아들놈은 인천에 있고, 큰딸년은 광주에 살고, 작은딸년은 대전에 살아. 모두 먼 곳에 살고 있으니, 이 늙은이가 막 숨이 넘어간다고 전화를 해도 언제 오겠나. 내 숨이 끊어져야 오지 않겠나.

 

며느리년들은 거울 앞에 앉아 화장하는 데 한두 시간 걸릴 테고, 차 몰고 오는 데 대여섯 시간 걸릴 텐데……. 조금 가까이 사는 딸년들도 애들 밥해 주랴 빨래하랴 공부 뒷바라지하랴 이래저래 바쁜데, 이 늙은이한테 마음 쓸 겨를이 어디 있겠나. 그러니 이 늙은이가 아프다고 전화하거들랑 귀찮더라도 잠시 왔다 가게. 사람 죽는 거 잠깐이니까.

 

 

 

 

 

지금 밖에는 무엇이 슬프셨음인지 주저리주저리 신께서 눈물을 흘리고 있고, 안에 있는 나는 손에 시집을 들고 두 눈에서 회한의 눈물줄기를 눈 밑으로 주르르 떨구고 있다.

 

어린이 집에서 배우고, 유치원에서 배우고, 학교에서 배우고, 학원에서 배우고, 과외에서 배우고, 그렇게 여러 곳에서, 그렇게 많은 것을, 그렇게 긴 시간동안 배우고도, 왜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일까?

 

고고성을 지르면서 이 세상에 오는 순간부터 값없이 부모님에게 그 많은 것들을 받아 왔으면서 부모님이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왜 우리는 모르는 것일까?

 

부모님에게 받은 그 수많은 것 중에서 조금만 아주 조금만 돌려드려도 된다는 것을, 왜 우리는 깨달지 못하는 것 일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한 것처럼 자식을 달라는 요구도 아니요. 가르치고 기르는데 들어간 재화를 돌려달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왜 우리은 깨달지 못하는 것 일까?

 

이 세상 다하는 날, 오셨던 저 세상으로 돌아가시려고 출발 하는 그 순간,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는 아주 짧디 짧은 그 순간에 얼른 와서 잠깐 손만 잡아 주면 되신다 하시는데, 왜 우리는 그 손을 잡아드리지 못하는 것일까“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