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와 해오라비
다 산
오징어가 물가를 가다가
문득 해오라비를 보았는데
하얀 눈처럼 눈부시고
잔잔한 물처럼 빛나기에
머리를 들고 해오라비에게 말을 하기를
“내 생각을 난 모르겠구나
실은 물고기를 잡아먹으려면서
어째서 고상한 척하는 거지?
내 배엔 늘 먹물 한 주머니가 있어
한 번 내뿜으면 주위가 온통 까매지지.
물고기는 앞이 어두워 지척을 못 보고
꼬리 치며 가려 해도 동서남북을 분간 못해
입 벌리고 삼키는 줄도 모르니
나는 늘 배부르고 물고기는 늘 속게 되지
네 깃털은 너무 하얗고 눈에 띄는구나
흰 저고리 흰 치마니 누가 의심을 않겠니?
가는 데마다 멋진 모습 먼저 물에 비쳐
물고기가 멀찍이 보고 살짝 도망가면
종일 서 있어도 바랄 게 없지.
다리만 시큰거리고 배는 항상 주릴 테니
까마귀 찾아가서 그 옷을 빌려 입어
적당히 자기를 감춰 편의를 추구하면
물고기를 산더미같이 잡아서
아내도 새끼도 먹일 수 있을 거야“
그러자 해오라비가 오징어더러 말하기를
“네 말도 일리는 있지만
하늘이 나에게 깨끗함을 주었고
내가 나를 봐도 깨끗하기만 한데
어찌 이 작은 밥통이나 채우자고
이 모습을 그렇게 바꾸겠니?
물고기가 오면 먹고 가면 내버려 두고
똑바로 서서 하늘 뜻대로 살 뿐이지.“
오지어가 먹물 뿜고 화내며 하는 말이
“바보 해오라비야 굶어 죽고 말어라.”
이옥규작 <평화>
다산 정약용은 오징어와 해오라기를 의인화 시켜 그들의 대화를 통하여 사회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에 대해 신랄한 풍자를 시로 풀어냈다.
다산 정양용 선생이 사셨던 시대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나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어찌 보면 해오라기가 바보 같아 보이고 도도한 이상주의가 참으로 어리석어보이기도 하지만, 해오라기의 사고는 우리들이 본받을 만하지 않은가?
한 평생 길게 산다하여도 인생사 100년이요.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듯이 갈 때도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인데, 세상부귀영화를 위해 친척도, 친구도, 이웃에게 먹물을 뿌리면서 까지 살아야하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던가? “소인이 어이 대인의 뜻을 알리요.”소인인 오징어가 대인인 해오라기의 큰 뜻을 알 수가 있겠는가.
子曰
君子泰而不驕 小人驕而不泰
군자태이불교 소인교이불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느긋하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되 느긋하지 않다.
오징어는 해오라기에게 굶어 죽으라고 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 것이다. 그 첫째는 태어나고 죽는 시기의 선택이요. 둘째는 태어나는 장소와 죽는 장소를 선택할 수 없고. 셋째는 천재와 바보 같이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능력인 것이다.
子曰
死生有命, 富貴在天
사생유명, 부귀재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죽고 사는 것이 명에 달려 있고
부하고 귀해짐은 하늘에 달려 있다.
아침에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펴 들었던 다산의 시 선집 『다산의 풍경』에서 위 시를 읽으며, 해오라비처럼 고고한 다산의 인품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고, 이를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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