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시간에 예속된 삶과 죽음이란 인생-Ⅱ

心田農夫 2013. 8. 13. 11:46

 

인생의 단계를 보통 다섯 단계로 나눕니다.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 이 다섯 단계의 인생이 길어야 백년입니다. 하루살이에 비하면 길고도 긴 인생여정이지만,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정이품 소나무의 나이가 대략 600년이라 하니 그 나무에 비하면 너무도 짧기만 한 것이 인생이지요.

 

인생여정이 길다하여 잘 살았다할 수 없고 인생여정이 짧다하여 잘못 살았다 말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일 것이고 누구나 무병장수를 원하겠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죽음은 뭔가 놀라운 것이 틀림없다. 삶이 그런 것처럼,

삶은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다

슬픔ㆍ아픔ㆍ고민ㆍ기쁨ㆍ터무니없는 생각들ㆍ소유ㆍ질투ㆍ사랑ㆍ외로움이라는 견딜 수 없는 불행.

이 모두가 삶이다.

그러나 죽음을 이해하려면 삶 전체를 이해해야한다.

대부분의 우리들처럼, 그 중한 가지만 가지고

그렇게 단편적으로 살면 안 된다.

삶에 대한 바로 그 이해 속에 죽음에 대한 이해가 있다.

그 둘은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슈나무르티의『삶과 죽음에 대하여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길을 정신없이 앞만 보고 걷어갑니다. 그러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노라면 잠시 멈추어서 한 번 쯤은 자신이 걷어왔던 길을 뒤돌아본다고들 합니다.

 

이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번쯤 뒤돌아본다는 인생여정. 그런 인생여정을 붓을 들어 그림으로 표현한 작가의 작품이 있습니다.

 

한스 발둥, 1484년경 슈베비슈 그뮌트에서 태어나 1545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화가입니다.

 

 

 

 한스 발둥 작. 1509~1510년. <삶의 세 단계와 죽음>

 

 

발둥은 뛰어난 소묘기술의 소유자였는데, 사실적으로 묘사된 인체는 그가 인물의 누드를 세심하게 관찰했음을 알려준다. 스승이었던 알브레히트 뒤러처럼 발둥 역시 화가 겸 판화가 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판화들을 다수 제작하였고, 스테인드글라스와 삽화책도 디자인 했다. 발둥은 히에로니무스 보스처럼 공포를 환상적으로 표현한 예술가였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1516년 제작한 프라이부르크 성당의 제단화이다. 명예와 부를 함께 누렸으며 스트라스부르에서 사망하였다.

                                          『THE ART BOOK중에서

 

 

 

                                            한스 발둥 작. 1539년. <인생의 세 단계와 죽음>

 

 

한스 발둥의 위 두 그림을 보면 인생여정을 세단계로 그린 것으로 두 작품이 비슷하다. 모든 인간이 거쳐야하는 인생의 세 단계를 네 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표현하고 있다. 모래시계를 들고 있는 해골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적인 죽음의 표현이고,

 

<삶의 세 단계와 죽음>의 하단 오른쪽의 아기와 <인생의 세 단계와 죽음>의 왼쪽 하단의 잠들어있는 아기는 인생의 출발점인 탄생을 의미하며,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에 빠져 있는 나신의 여인은 인생의 절정기인 청년기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 청년기에는 노년기에 대하여는 물론 그 뒤에 숨어있는 죽음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삶의 세 단계와 죽음>의 왼쪽 수심에 가득한 인물은 노년을 나타내는데, 죽음에 들려 있는 모래시계를 밀쳐내 냉정한 죽음의 현실을 피하려는 듯하다.

 

<인생의 세 단계와 죽음>에서는 중앙에 초췌한 노인이 젊은 시절의 자신을 돌아보는 듯한 모습으로, 젊음을 그리워하는 표정으로 젊은 여인이 두른 천을 잡으며 아쉬움과 미련이 담긴 모습으로 마치 우리나라 전설에 고향에 나오는 저승사자에게 끌려가 듯, 모래시계를 들고 있는 해골의 팔을 감기어 끌려가는 모습이다.

 

 

단상 : 왜, 그대는 모르시나요.

 

                               碧 石

 

왜, 그대

는 모르시나요.

저기 저 노인이

내일의 그대 모습인 것을

그대 오늘이야

젊음과 패기가 함께 할지라도

시간 열차 달리고 달려 내일이면

그대도 노인역에 다다른다는 것을

왜, 그대는 모르시나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흐르는 강물이 멈추지 않듯이

출생역을 출발하면

종착역인 저승역까지

무정차로 질주 한다는 것을

왜, 그대는 모르시나요.

 

왜, 그대는 모르시나요.

어머님 목숨 담보하여

새 생명 얻어 태어나

금이야, 옥이야,

추울세라, 더울세라 길러 놓으니

시간 열차 어느 사이

중년역을 지나 노인 역을 다다랐네

왜, 그대는 모르시나요.

청년역을 막 지난 자식

부모님께 말하네요

누가 그 열차 타라 했나요

그 누군들 시간 열차 타고 싶어 타고

내리고 싶다 한들 내릴 수 있던가요

왜, 그대는 모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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