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그 의중이 심히 의심스럽다.

心田農夫 2013. 9. 2. 16:35

 

 

 

국문학과 학우들과 문학탐방을 다녀 온지도 한참 지났습니다. 국문학과에 적을 둔 적도 없는 사람에게 동참을 하게 하여준 덕분에 문학탐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면을 빌려 객에게 다정하고 따스하게 대하여준 국문학과 임원진들과 학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문학탐방을 다녀와 바로 탐방기행에 대하여 적어 놓아야 겠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으나 여러 모로 바쁜 일이 있어 차일피일 미루다 그만 적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잠시 들린 국문학과 카페에서 대구문창대학원의 이종우님이 올려놓은 “김수영-이어령 논쟁”(이종우님은 ‘이어령-김수영 논쟁’으로 올렸으나 김수영-이어령으로 바꾸어 적습니다 )을 보고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한국 위정자들은 다행히도 뚜렷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만하라” 고 예술가에게 강요하지 않고 있다. 퇴폐적이든, 외설이든, 달을 그리든, 별을 그리든,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이것만 하라”가 아니라 “이것만 하지 말라”이다. 즉 정권유지에 직접적인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 이외의 것은 콩이든 팥이든 도리어 관심이 없는 소극적 검열이다

(이어령 : 문학은 권력이나 정치 관념의 시녀가 아니다) 중에서

 

 

 

 

“정권유지” 그 정권 유지를 하게 해주는 것은 누구인가? 그 답은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이 답을 해줍니다.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r perish from the earth. 국민의, 국민에 위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정권이란 국민이 임시로 맡겨주는 것이지, 자신들이 갖고 싶다고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력이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라고 국민이 맡겨준 것이 아닙니다. 그 권력으로 국민의 안전과 국민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국민이 통치자에게 잠시 맡겨 둔 것일 뿐입니다. 기원전에 살았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통치는 통치의 대상에 이익을 주는 것이오. 그러니까 통치자로서의 강자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기보다는 통치 받고 있는 약자의 이익을 도모한다고 봐야하오. 그러므로 참된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언제나 대상의 이익(국민의 이익)을 돌보기 마련이오.

                                                - 소크라테스 -

 

 

 

 

민주주의가 무엇입니까? 민주주의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고 언론의 자유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국민들에게, 문학인에게, 예술인에게“무엇을 하라”할 수 없고 “무엇을 하지마라”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특히 문학작품이나 예술이란 창작품에 대해서는,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민주주의는 위협적이고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엘리트 계급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민주주의 확산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확산을 막는 최고의 방법은 국민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는 것입니다.

               촘스키의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중에서

 

 

 

 

촘스키의 말대로 그래서 프로 야구가 생겼던 것이 아니던가요.어이 무식한 백성들아 정치는 내가 할 테니, 너희는 골치 아픈 정치에 관심 갖지 말고 야구나 보면서 즐겁게 놀아라.그래서인가 이어령씨 말처럼 “이것만 하지 말라”그러면 그 이외 것은 괜찮단다. 라고 하면서도 요즈음에 대학원에 북한학과가 있는 현실에서 일반인은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평범한 서적들이 왜, 민주주의 군대에서는 금서로 되어있는 것일까요?

 

문학작품이란 작가가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있든지, 그 작품을 독자가 읽고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대한민국의 독자들은 그런 정도의 안목은 갖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국가가 “이것만하라” “이것만 하지 말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일까요? 이어령씨의 글에 뜻을 노암 촌스키가 참 쉽게 설명을 합니다.

 

 

 

 

국민을 소극적이고 순종적으로 만들어가는 최적의 방법은 허용 가능한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 하지만, 그 범위 안에서 활발한 토론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한계를 넘지 않는다면 비판적인 반대 의견까지 권장합니다. 이렇게 하면 국민은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 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 중략 ---------------------

현재의 중동평화정책이 지난 25년 동안 분쟁당사국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권익을 존중하면서 기울여온 외교적 노력을 일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고, 팔레스타인의 국가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의 입장을 관철시킨 것이라는 사실자체에 대한 토론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촘스키의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중에서

 

 

 

 

제가 아는 바로 우리사회에 지식인들의 논쟁 중에 이종우님이 올린 김수영-이어령 논쟁이 있고, 장준하 선생이 창간한 『사상계』에 실었던 함석헌 선생님의 <할 말이 있다>에 대한 윤형중 신부의 반론의 글을 씀으로 해서 함석헌-윤형중의 논쟁은 <사상계> 독자들뿐만 아이라 그 당시의 지식인 사회에서도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뜨거운 논쟁을 애석하게도 저는 읽지 못했습니다. 아니 함석헌 선생님의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라는 책에 실려 있는 함석헌 선생님이 『사상계』에 실었던 ‘할 말이 있다’등 윤형중 신부님과 가졌던 논쟁의 글은 읽었으나, 함석헌 선생님 글에 대한 윤형중 신부님의 반론의 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아쉬운 마음입니다.

 

 

 

 

우리사회의 지식인들의 논쟁사가 있는 것처럼 프랑스에는 카뮈-사르트르의 논쟁이 있습니다. 이 두 거장의 논쟁은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유명한 논쟁사로서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아있습니다.

 

저는 문학탐방을 하기 몇 일전에 프랑스의 지성인『사르트르와 카뮈 우정과 투쟁』이란 책으로 두 사람의 논쟁에 대해 읽었습니다. 20세기 지성계의 두 거인인 카뮈와 사르트르의 논쟁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문학작품은 작가사상 그리고 작가의 정치관과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프랑스 국민들,

 

그리고 프랑스 정부도 어느 작가의 작품에 대하여 출판금지나 판매금지 그리고 이것은 읽으면 안 된다는 금서 조치를 하였다는 것을 보지를 못 했습니다. 이는 문학작품에 대한 차원 높은 프랑스인들의 높은 안목이 아닐까요?

 

 

 

 

그 옛날 공자께서 “民無信不立. 민무신불립”이라 했습니다. “백성들의 신뢰가 없다면 국가는 존립이 불가능하다.”라 했습니다. 국민이 있기에 국가가 있고 국가가 있기에 통치자가 있는 것이지, 통치자가 있기에 국가가 있고 국가가 있기에 국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김수영-이어령의 논쟁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이 문학탐방 때에 홍명희 생가를 들렸을 때에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습니다. 홍명희생가에 대한 괴산군의 방치 상태를 보고 그 당시 크게 실망을 했었습니다.

 

 

 

 

괴산군에 비하여 같은 월북 작가인 오장환 문학관은 그런 대로 오장환에 대하여 알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체험마당도 있었고 오장환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어 안치환, 정훈희 등의 유명한 가수들의 목소리로 CD에 담아 판매를 하는 등의 노력은 참으로 보기에 좋았습니다. 또한 생가가 초가집인데 나름대로 보존상태도 좋았습니다.

 

 

 

 

반면 괴산에 있는 홍명희 작가가 태어나고 생활을 했던 생가는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명문 사대부의 한옥으로 문화적 가치뿐 아니라 건축학적으로도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한 한옥을 보는 세계인들은 한옥이 보여주는 곡선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합니다. 경주의 양동 한옥마을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것도 한옥은 인체를 생각하여 과학적으로 설계된 우수한 건축물일 뿐 아니라 그 아름다운면에서도 예술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어 세계적으로 보존의 가치가 있어서 일 것입니다.

 

한번 훼손되면 다시는 볼 수없는 소중한 문화유산인 생가를 단지 월북 작가라는 이유로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금산군수를 지내고 한일합병을 반대의 뜻으로 자결을 한 그의 부친에 대하여는 생가 옆에 “義士 洪公 範植 追慕碑”라는 글을 적은 멋진 비석을 세웠습니다.

 

 

 

 

나라를 빼앗기는 아픔에 몸을 던진 군수를 추모하기 위해 추모비를 세우는 것에 대한 비판을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부친에 대한 추모비를 세우면서 작가인 홍명희에 대하여 문학비나, 설명문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홍명희에 대한 설명이 없었을까요? 아니 있었습니다. 생가 앞 쪽에 괴산 홍범식의 고택이란 안내판 끝자락에 “또한 근대역사 소설의 이정표가 된 『임꺽정(林巨正)』의 작가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 !888-1968)의 고택으로 널리 알려진 문화사적 유산이다.”라는 짧은글이 다였습니다.

 

왜 이렇게 짤막한 몇 줄만 적었을까요? 단지 월북 작가이기 때문일까요? 아마 그런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만, 임꺽정이 어떤 인물입니까. 이어령씨 말처럼 “이것만 하지 말라”는 것을 했던 인물이었고, 이어령씨 말처럼정권유지에 직접적인 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임꺽정이었기 때문에 그 작품을 쓴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추모비에 소요된 금액을 군청예산으로 집행하였다면 괴산군청이 세웠으니, 군수이름 정도야 이해 할 수 있다지만, 마치 자신들이 추모비를 세운 양, 군수이름, 군의회의장이름, 문화원장 이름을 적어 놓으면서도 근대역사소설의 이정표라는 임꺽정의 작가인 홍명희의 대한 문학비나 자세히 설명된 별도로 안내문이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보면서 과연 그 비석이 한일합병을 반대하며 자결한 홍범식 군수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인지, 아니면 그를 빌미로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서 인지 참으로 아리 아리송해서 알 수가 없고 그 추모비를 세운 그 의중이 심히 의심스럽기만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