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아두기

옛글에서 지혜를 얻는다.

心田農夫 2013. 10. 26. 11:16

 

 

海枯終見底人死不知心이니라

해고종견저나 인사불지심이니라

 

바다가 마르면 마침내 바닥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주제 엿보기〛

조선 영조 임금의 왕비를 간택할 때, 사대부의 여자들이 궁중에 많이 모였다. 그런데 한 여인이 방석에 바로 앉지 않고 방석 뒤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이에 임금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방석에 바로 앉지 않느냐!”

그 여인이 말했다.

“아버지의 함자가 방석 끝에 새겨 있어서 감히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선 시대 궁중에는 관리의 품계에 따라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방석이 별도로 있었는데, 아마도 그 관리 집안의 딸이라는 의미에서 여인들에게 아버지가 않는 방석을 제공한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여인들은 모두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방석에 무심코 앉았는데, 그 여인만은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방석에 앉는 것은 불경스런 일이라고 사양한 것이었다.

 

또 임금이 여인들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어떤 사물이 가장 깊은가?”

 

이에 어떤 여인은 ‘산이 가장 깊다.’고 대답하고, 어떤 여인은 ‘물이 가장 깊다.’고 하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

 

이때 자기 아버지의 방석에 앉지 않았던 여인만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 가장 깊습니다.”

 

임금이 그 이유를 물으니, 그 여인이 대답했다.

“어떤 사물이라도 그 깊이를 측정할 수 있는데, 오직 사람의 마음만은 그 깊이를 측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 여인인 마침내 왕후로 간택되었는데,

바로 정성왕후이다.

             추적지음, 김영진 엮음 『명심보감』중에서

 

 

 

 

 

“해고종견저나 인사불지심이니라.(海枯終見底나 人死不知心이니라)”라는 글은 우리가 자주 쓰는 “열길 물속을 알 수 있어도 한길 사람의 속을 알 수 없다.”는 우리의 속담과 같은 내용의 옛 고사(故事)다.

 

산다는 것은 아마도 만남의 관계가 아닐까? 만남의 관계가 없다면 사람은 살아 갈 수가 없을 것이다. 고립하여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니.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사회가 만들어지고 그 사회 안에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인간, 인간들. 그래서 기원전에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 관계 속에서 살다보면 평소에 알았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즉 인간의 두 얼굴을 발견하는 순간이기고 하다. 다시 말해 내 마음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리라.

 

하기야 때때로 자신의 마음조차 자신도 모를 때가 있는데, 남이야 어이 그 마음을 알 수 있으랴. 세월 따라, 상황에 따라, 이해타산에 따라 변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 아니던가. 그래서 나온 말이 아니겠는가. “해고종견저나 인사불지심이니라. (海枯終見底나 人死不知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