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하, 어수선한 세상을 향한 넋두리-1

心田農夫 2014. 6. 14. 17:49

한 동안 잊고 살았다.

내 삶이 힘들다 보니,

 

아니 어쩌면

나도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다 보니,

싫든 좋든 냄비 근성 유전자가 내 몸 속에 있는 것이리라.

 

메일에서 노무현 5주기,

『그가 그립다』가 새로 출판되었음을 알려준다.

 

벌써?

 

“스물두명의 작가들

그리움을 희망의 미학으로 엮다. “ 라는 글에

 

스물두명의 작가가

노무현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 할까 궁금해

바로 구입을 하고 대금을 송금했다.

 

한 동안 복잡한 일상에

읽던 책『철학자의 서재』를 덮어두었다.

다시 펴들었던 그 날에 구입한 책,

 

『그가 그립다』

 

우연일까?

아니면 요즈음 출판계의 유행일까?

 

『철학자의 서재』표지에는

“한국의 젊은 지성 100명과 함께 읽는

우리시대의 명저“라는 글이 있다.

 

단독 작가의 글만이 실려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글이 실려 있다는 것이니

여러 사람의 글을 읽을 수 있어 그 또한 나쁘지 않다.

 

『그가 그립다』도착했다.

 

노란색의 표제,

그 중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전거를 잡고 있는 사진이 있다

 

『철학자의 서재』를 잠시 덮어두고

『그가 그립다』를 먼저 읽기 시작했다.

 

다른 책인데,

두 권의 책 중에는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제법 있다.

그 책속에 있는 글들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읽을며 여러 생각을 하게 했던 글들과 생각을 넋두리로 풀어본다.

 

『철학자의 서재』의 글과 그 글을 보고 한 생각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400년 전에 살았던 홉스가 본다면 뭐라고 할할까? 그의 대답은 아마 대한민국은 더 이상 국민을 지키는 국가 공동체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철학자의 서재』 P133

 

 

“대한민국은 더 이상 국민을 지키는 국가 공동체가 아니다.”이글을 읽을 때에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대한의 미래요 희망인 많은 청소년들과 애꿎진 선량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맹자야 일찍이 “백성들이 가장 존귀하고 국가의 상징인 사직은 그 다음이고 임금은 가장 가벼운 존재”라 했고

                                    『철학자의 서재』 P24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는데,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을 그들을 가로 막아섰다. 맹자의 말에 의하면 백성들이 가장 존귀하고 임금(대통령)은 가장 가벼운 존재라 하였는데, 대통령을 뽑아준 국민이 대통령을 만날 수 없는 나라, 참 슬픈 대한민국이다.

 

 

이글을 막 마무리할 무렵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이 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아가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 나라에 그런 대통령이 있었던가.

 

나는 그가 『논어』에 나오는 ‘어진 사람’처럼 죽어도 죽지 않는, 오히려 죽어서 다시 살아나는 대통령으로 우리 역사에 남으리라 믿는다. 오늘(2009년 5월 30일) 국민장이다. 슬픈 날이다.

                                        『철학자의 서재』P 31

 

“이 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찾아가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전직 대통령”전직 대통령이라 누구나 찾아가 만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집 앞으로 걸어가려면 전경들이 막아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누구나 찾아가면 만날 수 있었던 노무현대통령은 죽어도 죽지 않고 역사 속에 다시 살아났지만, 가장 존귀한 국민이 만나겠다고 찾아가는 길을 ‘명박산성’으로 막아섰던 대통령.

 

세월호 유족들에게 직접 그들의 말을 듣겠다고 약속한 대통령, 그 말이 실천되지 않아 만나러 가겠다는 길을 막아선 경찰들, 그 경찰들의 대통령. 아마 그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서도 결코 역사 속에서도 살아나지 못하리라.

 

 

인권은 최소한의 것을 가지지 못한 자가 최소한의 것을 요구할 때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런데 막강한 힘인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이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위대 앞에서 자신들의 인권을 들먹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즉 최소한의 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인권’을 막강한 공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갖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철학자의 서재』P 706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최소한 필요로 하는 권리인 ‘인권’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 요구하면 언제나 과격하게 막으면서도 몇 백 명을 수장 시킨 세월호의 선장에게는 피의자의 신분임에도 경찰서의 유치장이 아닌 경찰관의 집으로 모시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지.

 

 

“국민이란 동일한 입법부에 의해 대표되며 공통의 법률 하에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집단”을 말한다. 그러나 귀족 신분은 ‘동일한 법’으로부터 벗어난 특권층이므로 ‘국민’에 속하지 않는다. 국민과는 별개의 집단이라는 것이다.

                                      『철학자의 서재』P487

 

 

아! 이제야 궁금증이 조금 풀리네. 아마 그들은 국민이 아닌 귀족 신분이라 그랬구나. 몇 백 명을 태우고 가는 유람선 선장이 대낮에 무었을 하고 있었기에 팬티 바람이었을까? 아마도 귀족 선장은 팬티바람으로 근무를 하는 것 인줄을 예전에 미처 몰랐네.

 

청부 살인을 한 큰 기업 사모님은 감옥이 아닌 대학병원 특실에서 지내고 피의자 신분인 세월호 선장은 경찰관 집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을 보니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대한민국 귀족들이었다.

 

헌데, 대한민국에 인도처럼 카스트 제도가 있었던가? 금시초문일세!

근대국가의 탄생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샤를 몽테스키외가 이런 현상을 보았다면 무엇이라 말했을까?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의 삼권 분립의 원칙을 주장했던 그는 법의 정신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한 사람의 손에 입법권과 행정권을 쥐여 주고나면 우리는 어떤 자유도 누릴 수 없다. 따라서 군주가 폭압적인 법을 제정해 폭정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법권은 입법권과 분리되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인권이고, 이것들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서 활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결국 이것이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철학자의 서재』P256

 

 

아! 우리는 언제나 형식적인 삼권분립이 아닌 진정한 삼권분립이 실현되는 나라에서 살 수 있을까? 귀족의 인권 뿐 아니라 가난한 민초의 인권도, 길거리에서 잠을 자고 무료급식소에서 한 끼의 식사로 하루를 사는 노숙자의 인권도 중요하다는 것을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알까?

 

어수선한 마음이 하, 어수선한 세상을 향해 넋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