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아무리 엿장수 마음대로라지만

心田農夫 2014. 6. 3. 19:16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어느 날 혼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허무해 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

 

주위엔 항상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 했는데,

이런 날 이런 마음을 들어 줄 사람을 생각하니

수첩에 적힌 아픔과 전화번호를 읽어 내려가 보아도

모두가 아니었다.

 

혼자 바람맞고 사는 세상

거리를 걷다 가슴을 삭이고

마시는 뜨거운 한 잔의 커피

 

…… ,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이 해 인

 

 

기억을 더듬어 보니 대략 중학교 때쯤인 것으로 기억이 된다. 동네 형이 이렇게 물었다. “엿장수가 가위질을 몇 번하는지 아는 사람?”한아이가 4번, 어느 아이는 6번이라고 하니까. 다른 아이가 아니야 다섯 번이야, 자신만만하다는 듯 손바닥으로 짝짝, 짝짝짝 쳤다. 그러자 동네 형이 “야, 그건 엿장수 마음 대로야”하던 생각이 난다.

 

4월 한 달은 이런저런 번민으로 밤잠을 설치는 나날이 계속되었고 그 번민을 통해 결심을 하고난 후, 5월 한 달은 낮에는 할 줄도 모르는 일을 하느라 몸은 몸대로 피로를 지탱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렇게 지치면 밤에는 정신없이 잠속으로 빠져든다는데, 몸이 너무도 지쳐서일까? 누우면 잠시 잠이 들었다 깨어 시 잠에 들지 못하고 잠을 설치는 나날이 계속되다보니, 낮에 일을 해야겠는데,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입장이 되다 보니,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객지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장사라는 것을 하였는데, 몇 년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 질만하니까 괜찮아 보였던지 , 집주인이 자기둘째아들이 제대를 두어 달 앞둔 시잠에서 점포 세를 100% 올려달라고 해서 시내에서는 감당이 안 되어 가진 돈에 맞추다 보니 읍으로 옮겨온 지가 올해 4월로 19년이 되었다.

 

헌데, 올 3월에 주인은 다시 점포 세를 올린 다해서 어쩔 수 없이 올려주기는 했는데, 올려주고 며칠 후 우연히 옆집 점포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나보다 한참을 늦게 입주한 옆집사장 보다 19년 전에 건물을 짓자마자 입주해 한자리에서 19년을 있던 나에게는 보증금도 500만원 더 받고 월세도 5만원을 더 받는 것이었다. 옆집 점포나 내가 사용하는 점포나 평수도 같은데, 무슨 이런 계산법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19년을 장사가 되던 안 되든 점포 세를 밀려본 적이 없다보니 장사가 잘되는 줄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바보로 생각을 하는 것인지, 몰랐으면 모를까. 알고 나니 참으로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해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 번민이 시작되었다. 이제 그만 장사를 접을까? 아니면 어디라도 옮겨서 조금 더 할까? 아님 이참에 늦었지만 이제라도 적은 봉급이라도 받고 전공을 살려볼까?

 

결국 점포를 옮기기로 마음먹고 인테리어업자를 불러서 될 수 있으면 살릴 것은 살렸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했더니, 맞는 말이라고 하면서 이런 불황에 재사용할 것은 사용해야지요. 하더니 돈이 안 될 것 같아서인지 견적도 내지 않고 연락을 해도 바쁘다는 말 뿐이다.

 

점포를 비워줘야 하는 날짜는 다가오고 가야 할 점포는 수리가 안 되다 보니, 아! 정말 사면초가였다 . 자신이 못할 것은 맡기고 해볼 것은 해보자는 마음으로 난생처음 페인트공이 되어 페인트칠을 삼일동안하고 전기도 손을 보고, 칸막이를 뜯어낸 곳에 똑같은 타일을 구하지 못해 전혀 색이 다른 타일로 손수 타일공이 되어 붙여보기도 했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옮길 곳이 옮길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일력시장에 다니는 젊은 친구가 간간히 들려서 조언을 구하고는 하는데 들렸다 이사를 한다고 했더니 이사를 도와주겠다고 하여 그래라 어차피 사람을 구해 일당을 주려고 했으니, 얼마를 줄까 했더니, 일당으로 10만원씩 달라고 해 그러라 하고

 

내가 많이 지치기도 했고 한자리에 19년을 있다 보니 버릴 것을 버려가며 정리를 하면서 천천히 하기로 하고 5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서 이사를 하기로 했는데, 다른 곳에서 일당을 조금 더 준다고 아무 말도 없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간판과 전면 유리 선팅을 맡긴 업자는 선거철이라 바쁘다며 하나 하고 며칠 뒤에 연락을 하면 다시 잠깐하고 결국 뒷면 간판과 전면 선팅은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해야 했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처지만, 그리고 미처 정리가 다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자리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을 하였다.

 

이번 일로 많은 것을 배웠다. 남의 일도 자신의 일처럼 성실히 하는 사람, 그냥 적당 적당히 하면서 돈만 받아가려는 사람. 아무리 엿장수가 가위질을 몇 번하는가는 엿장수 맘이겠지만, 그래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는 도의가 있고 신뢰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해인 수녀님의 위 글은 마치 수녀님이 나의 심정을 전해 듣고 써주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꼈던 점이다. 이 나이 먹도록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이해인 수녀님의 글처럼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고 힘들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