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속의 작은 정원

비가 피워낸 추억이란 꽃

心田農夫 2015. 9. 26. 13:00

 

 

단상 : 회상-2

 

                        碧 石

 

샤워와 다르게

하늘물줄기 샤워는

시원함보다 서늘함이었고

상쾌함보다는 오한이었네

 

으스스함에

따끈한 커피생각 아련히 피어오를 때

아득한 옛날이 성큼 다가와

바로 어제일 인양 눈앞에 생생히 살아왔다.

 

지독한 가난이

철없음에 철들게 하여

한번뿐인 인생이지만

동생들 위해 속내 고이 접고

떠나야 만했던 머나먼 양녀의 길

 

너는 나를 알고 나는 너를 알기에

나를 못 가게 잡아 달라 말 못하는 너

너를 보낼 수 없다 잡아 주지 못했던 나

 

언제 다시 오려나

아니 다시 돌아 올 수 있으려나

빗물이 눈물을 감추어주고

빗소리 울음을 삼키어 주기에

땅을 보고 안 우는 듯 너는 울었고

하늘 보며 안 우는 듯 나도 울었지

 

 

 

                           (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삽화 인용함.)

 

 

비는 생명을 품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 희망을 준다. 그 희망은 아득히 잊고 살았던 기억에게 조차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 그 생명은 세월이 지나 죽은 것 같았던 그 때를 지금 이때로 새 생명을 주어 추억이란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한다. 새 생명으로 피어난 추억은 그리움과 함께하고 그리움은 외로움을 동반한다.

 

 

어제 내리던 비가 오늘 이 시간 까지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 비가 그치면 가을은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 오겠지? 계절에게 성숙을 주듯이 철없던 시절의 추억을 성숙하게 비춰준다. 비가 내리면 발길들이 뜸해진다. 뜸한 발길이 덩그러니 혼자임을 새삼 느끼고 혼자이기에 소리도 잠들어 고요한 고요는 외로움을 동반한다.

 

 

<

                               <쿠데이의 템풀 산의 소나기. 1834. 목판화. 런던 대영 박물관>

 

 

수선화에게

 

                정 호 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거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 씩 마을로 내료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