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유식한 지식인의 무식한 처사

心田農夫 2017. 6. 16. 12:15


                                    <강진 용수리 마을에서 두레를 할 때 쓰던 농기>


  

예전에는 책을 서민들이 구해 읽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힘들었다는 것을 책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여 이제는 너무도 많은 책이 출판되는데, 아니 책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출판되어 나오고 있으니 어떠한 책을 읽을까 고민 아닌 고민을 때론 하게 된다.



<벼와 보리의 닫알을 털어내는 도구인 탈골기>



대체로 읽고 있는 책 속에서 다음에 읽을 책을 구입해 읽게 되고, 인터넷 서점에서 오는 메일을 보고 선정해 구입해 본다. 이번 구입한 책처럼 방송을 보고 구입해 읽는 경우도 종종 있기는 하다. 이번 대선기간 중에 있었던 대통령후보들 텔레비전 토론 보면서 알게 된 문재인의 운명이 그렇고 지금 읽고 있는 책 대통령의 글쓰기역시 방송을 보고 구입해 읽고 있다.


                                        <곡식에 섞인 쭉쟁이와 먼지 등을 가려내는 데 쓰는 도구인 둥근 바람통 풍구>



이 책을 읽다보면 너무도 많은 외국어가 필요 없이 쓰이는 것을 볼 때마다 한심한 생각이 든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외래문화와 문명을 받아드려야 하는 현실에서 미처 우리글과 말로 표현하기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쓰게 되는 외래어야 그렇다 쳐도 우리의 글과 말로 표현해도 될 말과 글을 구지 외국어를 쓰고 말해야 하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촘촘한 날 사이에 벼 보리 밀 따위의 이삭을 넣고 흩어내어 낟알만 터는 데 쓰이는 홀태



그렇게 외국 단어로 쓰인 글을 볼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외국어를 알고 있는 유식한 사람이다라고 잘난척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잘나고 유식한지는 몰라도 하는 행위는 무식한 처사라고 보여 진다. 글을 잘 쓰니 책을 출판했을 것이고 책을 출판하였으니 작가일 것이고 작가라면 국어에 관한한 일가견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얕은 곳의 물을 높은 논이나 밭으로 퍼올리는 도구인 용두레>


더더군다나 한나라의 대통령 두 분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자리에 있었다니 대단한 글쓰기의 능력을 보유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책 전체 내용에 대하여서는 평을 할 입장이 못 된다. 아니 그럴 능력이나 안목이 솔직히 없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하여 배우는 것도 있지만 외국어로 적고 있는 부분을 읽을 때마다 솔직히 천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못자리할 모판의 흙을 판판하게 고르는 도구인 골번지>


왜냐하면 세계에서 인정받는 언어학 석학들이 한글은 과학적인 글이요 배우기 싶고 의성어 의태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한 한글을 쓰기보다 외국어를 필요 없이 많이 쓰는 것은 조국의 국어를 사랑하기 보다는 사대주의 사상에 젖은 몰지각한 사람이 아닐까? 이글을 쓰는 것도 책을 보다 간간히 나오는 외국어에 식상해 가며 읽고 있다가 한 쪽에 너무 많은 외국어 단어가 적혀 있기에 화가 나서 읽던 책을 덮고 이 글을 쓴다.


                          <벼의 겉껍질을 벗기는 도구인 매통>



"좋은 콘텐츠(내용, 내용물)의 조건은 무엇일까.  226


목적의식이 분명해야한다.

콘텐츠(내용물)를 통해 무엇을 줄 것인지 먼저 생각하라. 재미나, 감동이냐, 정보냐, 교훈이냐, 공감이냐, 위로냐, 생활의 유익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스토리(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스토리텔링이(이야기하기가, 이야기전게가) 유행이라서 따르자는 것이 아니다. 스토리(이야기)가 있어야 읽힌다. 스토리(이야기)가 거창하면 에피소드(일화)라도 많이 포함해야 한다.

 

사람보다는 사람과 연관 짓는 게 좋다.

사람들은 사람에 관심이 많다. 하고 싶은 말을 사람과 관련지어 풀어내라.

 

내 것이어야 한다.

원래 내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콘텐츠(내용물)로 내 놓을 때는 내 것이어야 한다.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니고, 남과 다른 것이어야 한다.

 

널리 확산될 수 있는 콘텐츠를(내용물을) 만들라.

콘텐츠는(내용물은) 콘텐츠(내용물)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인용되거나 공유되지 못하면 죽은 콘텐츠(내용물이). 읽히는 콘텐츠(내용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글쓰기의 모든 것이란 책에서는 3C로 설명한다. 어떻게 포장할 것인지 콘셉트Concept(개념을, 의미)를 기지고 , 독자에게 맞게 커스터마이징Customize(특화, 설정)해서, 창의적인Creative 화법으로 풀어내라고,”                                                            227쪽 전문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중에서


                  <가을에 수확한 벼를 보관하던 나락뒤주>



바로 위 문장의 내용물(콘텐츠)을 만드는 세 가지 (3C)를 설명하면서 " 콘셉트Concept"  "커스터마이징Customize"은 외국어로 쓰고 유독 세 번째의 창의적인Creative이란 단어는 한글로 쓰고 있다. 즉 글을 쓰는데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식한 척하는, 잘난척하는 유식한 지식인이지만 무식한 처사를 하는 작가라고 하는 것이다.

 

                           <짚을 거적처럼 엮어 곡식을 담던 섬> 


 

세종대왕께서는 눈에 병까지 얻으며 글을 읽지 못하는 백성을 안타깝게 여겨 훈민정음 한글을 창제하신 것이다. 우리나라 말과 소리가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쉽게 익혀 나날이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훈민정음 한글의 창조 이유이다. 즉 양반이 아닌 서민인 우리를 위해 한글을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국민들은 세종대왕을 성군이라 한다.

                     <소가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논밭을 개간하거나,

                                돌이나 나무뿌리를 캐낼 때 쓰는 따비>


 

그렇게 창제된 글인 한글로 표현해도 될 것을 구지 외국어로 표현을 할 이유가 무엇인가. ( )속의 단어는 본인이 작가의 외국어 표현을 한글로 적어보았다. 한글로 적어도 전체 내용은 달라 질 것이 없지 않은가. 한글이 창제된 조선시대에도 최만리 같은 양반 놈들, 즉 그 시절 유식인들 한글을 사용을 반대했고 언문이라 하여 낮게 생각하였고 지금도 한글전용보다는 되먹지 못하게 외국어와 혼용하여 쓰는 것을 보면 한심한 생각이 든다. 아니 그들은 양반이라 그런 것이리라.

 

                 <논바닥을 평평하게 고르는 데 쓰이는 도구인 나래>


 

우리나리의 한글이 문자를 가지지 못한 인도네시아 중부의 브트섬에 사는 소수민족인 치어 치어족이 우리의 한글을 언어로 표기하는 공식문자로 사용할 것을 결정하여 훈민정음 한글을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신토불이라는 말처럼 제 땅에서 나는 것을 먹어야 몸에 좋은 것처럼 우리의 글을 우리가 아끼고 소중히 할 때만이 세계에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고 한글로만 쓰인 작품이 많이 출판되어야 만이 우리나라에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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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들을 현재 기계화 영농으로 점점 사라져 이제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는 우리나라 전래적인 농기들이다.

외래어, 외국어가 신문, 방송, 책에서 차지하는 범위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비추어 언젠가 한글이 사라지지 않을까? 언제가 영어공영화를 주장하는 인간들이 있었기에, 이글과 연관 지어 사진을 골랐다.

위 사진은 대구은행 사보향토와 문화 에서 인용하였다. 저작권에 문제가 있어 연락주면 바로 삭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