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고향 친구, 객지 친구

心田農夫 2020. 12. 28. 12:30

                                                서울 손님

                                           

                                                                       碧 石

 

                                            나라 수도 전 지역이

                                            마치 자신의 고향이기라도 한 듯

                                            서울에서 왔다 하면

 

                                            헤어졌던

                                            십년지기라도 만난 듯

                                            그 반가움은

                                            손님과 장사꾼의 관계를 망각한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기도 하더라만

 

                                            텃세라는 세금을 아니 내서일까?

                                            도무지 정을 주지 않는 이 땅에서

 

                                            정 주리며 사노라니

                                            잠시 다녀가는 서울 손님

                                            뒷모습도 그립기만 하더이다.

 

 

에드문드 니만 위트비 1850년 켄버스에 유채

 

 

태어나면서 운명은 정해진다. 정해진 팔자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라는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지나온 삼십여 년의 지난 삶을 돌아보면, 객지 생활과 장사치로 살아갈 팔자였던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피치 못할 상황에 고향을 떠나서 이곳저곳을 떠돌다 대구에서 직장을 잡고 생활하다 스카우트되어 이곳에 왔지만, 회사는 일 년 만에 문을 닫고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 시작한 것이 장사였다.

 

 

얀 브뢰겔, 1613면, 겐버스에 유체, <동네 장터>

 

고향을 떠나 온 지가 어제 같은데, 언 삼십 년이 흘렸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객지에서 머물지 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지금도 이렇게 이곳에 머물고 있다. 장사치라 그런지, 이곳에서 지내 온 세월에 비해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아니 어쩌면 친구라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친구가 아니었던가 보다. 김초혜 작가의 말씀처럼 세상에는 얼굴을 알고 지내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얼굴을 안다고,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한다고 친구는 아니다.”라는 말을 절감하게 된다.

 

 

바렌트 가일, 1650년, 캐버스에 유채, <교회 옆 가금시장>

 

올 한해 한 교수의 갑질로 정말 힘들게 보내고 있다. 이곳저곳에 항의도 해보았고 교육부에 갑질 신고도 해보았으나 전혀 도움이 안 되었고 오히려 학교 측에 미운털만 박히게 되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대학원 총장을 만나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교수의 갑질에 대한 정황을 설명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마침 한 지인으로부터 모 조합장이 총장과 잘 알고 지낸다며 그쪽에 부탁해보라고 하기에 그동안 연락이 없었는데, 직접 부탁하기가 망설여져, 조합장과 절친한 사람에 나의 의사를 전달했더니, 마치 자신이 조합장이라는 듯한 말을 한다.

 

  

길리스 모스타이르트, 1583년, 캐버스에 유채, <안트훼르팬 근교 호보캔의 정경>

 

만날 때마다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내왔는데, 즉 친구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진정한 친구란 서로 진정한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다.”라는 작가의 말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서운한 마음과 함께 고향 친구였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이 들었다. 내가 지금 고향에 있고 고향 친구에게 위에 했던 부탁을 했다면, 그래 전화 한 통 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다고 진작 내게 말하지, 그랬니,” 아니 한발 더 나아가 내게 전화해 총장의 일정을 알아보고 그날 내가 같이 가줄게라는 말을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는 제2의 자기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콕스, 1835년경, 수채, <와이 강변의 건초>

 

 

그러나 누구를 원망하리오. 나의 부덕의 소치인 것을, 전화 한 통 해주면 좋겠다는 부탁도 선뜻 받아주지 못하는 그 사람에게 비친 나라는 사람은 그 사람의 친구가 아니라 그냥 인사나 주고받는 사이였던 것을,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나의 잘못이다. 이는 아직도 마음 공부가 부족한 탓이리라. 공부한다고 방치했던 마음을 가꾸는 텃밭을 열심히 경작하여 좋은 우정의 열매를 맺으려 구슬땀을 흘려야 한다는 작은 깨달음을 얻는 저녁이요, 고향이 그립고 고향에서 함께 했던 죽마고우가 사무치게 그리운 저녁이다.

 

 

윌리엄 질핀, 1770년경, 펜과 잉크 위시, <와이 골짜기 풍경>

 

                                            친구란 두 육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좋은 친구란 좋은 스승과 마찬가지로 그에게서 좋은 점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친구란 인생의 약이라는 말도 있고, 진정한 친구는 세 명이면 족하다.

 

                              세상에는 얼굴을 알고 지내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얼굴을 안다고,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한다고 친구는 아니다.

 

                                    서로 진정한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다.

 

                                                                                      김초혜의 행복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