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책을 보다 문득

心田農夫 2022. 4. 9. 11:27

                                     아테네 시민은 유죄투표로 소크라테스를 죽였다.

                                     민주주의를 내세워

                                     한국 국민은 주권 행사로 막무가내 왕을 선출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한가한 시간에 책을 보노라니 무척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기원전 399년 아테네에서 일어났던 일과 21세기인 2022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 다르면서도 한편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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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레토스의 고발로 법정에 세워진 소크라테스의 유무죄를 묻는 투표의 표 차이가 30만 표가 났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나는 표 차가 크게 났으면 났지 그렇게 근소한 줄은 몰랐습니다. 보아하니, 30만 표만 방향을 바꾸었으면 나는 무죄 방면되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라고 말한다.

 

아테네 인들은 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현자인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내본 것으로 21세기 이 시점까지 세계인들에게 어리석은 유죄판결이었음이 오점으로 남았다.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의 표 차이가 26만 표 정도라니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대한민국은 헌법 제1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한 국민이 대통령을 뽑은 것이 아니라 왕을 뽑으므로 부마항쟁, 광주 민주화 운동, 광화문 촛불 혁명 등 수많은 목숨을 희생으로 이루어놓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야 말았다. 먼 훗날 세계 역사학자들은 한국인의 어리석은 주권 행사에 대해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당선인이 국민의 여론도 무시하면서 하고자 하는 일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왕이 아니 대통령이라면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왕의 집무실은 누구를 위한 집무실인가?

어느 날인가 <다양한 독서가 필요한 그대에게>란 제목으로 이 난을 통해 글을 드린 적이 있다. 오늘도 또 한 번의 글을 드리고 싶다.

 

책 좀 보시라!

볼 시간이 없으신 것 같아 토마스 모아의 책의 내용을 빌려서 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한다. 이 말을 염두에 두고 임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적어본다.

 

 

 

 

                               “애초에 백성들이 왜 폐하를 왕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왕에게 묻습니다.

 

                                폐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를 위해 그랬던 것입니다.

                                폐하가 전심전력을 다해 그들의 삶을 평안하게 해주고,

                                당한 일로부터 보호해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폐하의 사명은 폐하의 안전이 아니라 백성의 안녕을 돌봐주는 것입니다.

                               그건 양을 먹이는 것이 양치기의 사명입니다.”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중에서

 

 

 

아무리 왕이라도 백성이 왕으로 삼은 이유는 왕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 자신을 위해 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왕이 안전을 위해 집무실이 중요할지 몰라도 왕의 안전이 중요한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위해서 중요한 것이고 왕의 존재성은 백성이 존재하기에 왕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코로나19 펜테믹 현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집무실 이전에 드는 그 큰 비용을 들여서 국민을 돌보아도 시원찮은데, 아무리 군에 다녀오지 않아 국방 안보에 무지하다 해도 안보에 공백을 초래할지 모르는 일을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면서 졸속으로 처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막무가내로 청와대에는 단 한발도 들여놓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철부지 어린아이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어서 청와대에 들어가 1여 년 정도 근무하면서 집무실을 청와대가 아닌 국방부로 옮겨야 하는 정당한 이유와 필요성에 대하여 국민에게 밝히고 국민을 설득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집무실을 옮기겠다면, 국민의 돈으로 옮기는 비용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그대의 돈으로 이전을 하라.

토머스 모어의 말처럼

 

 

 

 

 

                             “왕은 다른 이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의 재산만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스스로 지출과 수입의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중에서

 

 

 

 

인디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그 마을에 노인이 죽으면 마을에서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 그대보다 조금 더 살아온 노인이기에 글을 써본다. 그러나 이 촌부도 이런 글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황혼의 시기를 지내는 사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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