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죽음이 두려운 이유

心田農夫 2022. 5. 19. 16:31

신은 음주와 똑같이 즐거운 도피 수단이다. 마음이 도망가 숨을 때 신과 음주는 별로 다르지 않다. 사회학적으로 음주는 아마 별로 좋은 건 아닐 것이다. 신에게로 도망가 숨는 것도 또한 좋을 게 없다.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윤회와 부활을 믿거나 몇몇 다른 형태의 신앙에 매달린다. 그러나 죽음이 무엇인지 전정으로 알고 싶은 사람은 신앙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받기만 하는 것은 미숙한 것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심리적으로 어떻게 죽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대개 죽음이라는 사실을 절대 들여다보지 않고 그 속에 함축된 놀라운 것들을 좀처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내세가 있다는 믿음을 통해 달아나거나 윤회사상에 매달리기를 더 좋아한다. 우리는 이렇게 위안을 주는 설명들과 정말로 많은 이상과 주장과 부정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 따르는 모든 상징과 신화들도 가지고 있다.

                                                                                     자두 크리슈나무르티 삶과 죽음에 대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직면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잠시 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괴롭히던 정념으로부터 다소나마 풀려날 것이디.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중에서

 

 

 

 

며칠 전 전에 손님으로 오셨던 사회복지사이며 재가 센터를 운영하며 신천지 교인 한 분이 찾아와 성경 공부를 같이하지 않겠느냐 한다. 자신은 힘들 때 하나님을 만나 지금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자영업을 하다 보니, 손님으로 오셨던 분들이 자신의 종교 교리를 내세워 전도하려 한다.

어제도 몇 번 오셨던 한 교회의 목사 사모가 예수의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역사적으로 증명이 된 부활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면서 이 세상 힘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면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으며 죽어서도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사모님, 내가 책을 좋아하는 줄 알고 기독교 서적 몇 권을 가지고 와서 부활의 역사적 증거를 확인할 수 있다며 읽어보라고 하기에 마음에 없지만 그래도 가져다준 성의를 생각해, 두 권 읽어보았으나 도무지 마음에 와닿지를 않는다. 그렇게 책을 놓고 가시고는 몇 달 만에 오셔서 책을 읽어보았냐고 묻기에 두 권을 읽어보았으나 책 내용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책을 돌려드렸다.

 

 

 

 

 

인간은 누구나가 영생을 원하는 것 같다. 기원전 221, 진나라는 여섯 나라를 모두 무너뜨리고 중국을 통일했다. 그리고 자신을 망한 나라의 왕들과 다른 호칭으로 부르기를 원했고 시황제로 호칭하게 했다. 이 시황제는 영원히 살기 위해 각지로 사람을 보내 영원히 살기 위한 불로초를 구하도록 했지만, 결국 죽음 앞에는 굴복하고 말았다.

 

 

 

 

 

어느 종교의 경전에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였고, 중세 로마 시대의 종교단체에서는 죽은 사람의 죄를 면하여 준다는 증명서를 금품을 받고 팔기도 했다. 그 증명서가 있어야 죽은 사람이 천당을 갈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들은 그들이 천시했던 장사치들의 장사행위를 신성한 성전에서 당당히(?) 했다. 그들이 말하였던 영생의 약속에 대해 그들의 신은 2000년이 넘도록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요즈음 전에 읽었던 죽음에 관한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한 시절 죽음에 관한 논문을 써보겠다고 한동안 죽음에 관한 책들을 많이 보았다. 티벳 死者, 이집트 死者, 퀴블러 로스의 인간의 죽음, 에드가 모랭의인간과 죽음, 셀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위 예문을 인용한 자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등등,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하나 정리하여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어버이날을 맞아 혼자 있지 말고 올라오라는 말에 23일을 가족과 함께하다 내려왔다. 57일에는 수원화성에 다녀왔고, 8일 저녁에는 두 딸이 사 온 카네이션을 놓아둔 식탁에서 주문하였던 케이크를 찾아와 먹으며, “내가 아파서 입원하게 되면 연명 치료는 하지 말라.”, “내 공부방 책상 서랍에 나에 관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 등등을 전했다.

 

 

 

 

 

나는 장례식장에 가면 늘 주변을 돌아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나에게 영생의 확신이 있어.”라고, 그런데. 크리슈나무르티는 이렇게 말한다. “‘죽음 다음에도 나 자신이 계속될 거라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과 교리를 가지고 부활과 윤회를 믿는데, 이것들은 죽음이라는 실체로부터 도망치는 수많은 방법이다.” 우리는 신앙이 있든 없든 반드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 죽음 후를 모르는 것뿐이고 그래서 죽음이 두려운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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