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진정한 친구란

心田農夫 2022. 6. 30. 18:08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신영복의 처음처럼, <함께하는 비>, 인용

                                            

 

                                                   위 작품은 신영복의 처음처럼에 실려있는 것임.

 

 

 

얼마 전에 퇴근길 차를 운전하는 중에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서울과 포항이라는 거리가 거의 연락이 없이 살아오다 자녀들 결혼식을 앞두거나, 누군가의 장례가 있을 때는 소식을 전하고는 했는데, 누님과 아내와 함께, 서울에서 출발하여 포항을 거쳐 통영에 들렀다. 부신을 들려 강원도를 거쳐서 서울로 간다며 포항의 해돋이 명소인 호미곶을 들리려고 하는데 가는 길에 포항에 있는 나를 잠시 만나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위 작품은 신영복의 처음처럼에 실려있는 것임.

 

 

 

군에서 제대하고 하나둘 직장을 구하던 청년 시절 우리는 만났고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인 모임을 하고는 했었다. 그 시절에는 단 한 친구만이 결혼했고 우리는 미혼의 상태였었다. 객지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나로서는 서울을 오가기 힘들기도 했고 점점 친구들과 멀어져 갔다. 그래도 자녀를 출가한다는 소식을 접하면 서울에 올라가 직접 결혼식에 참석하거나 일이 있어 못 갈 때는 축의금을 보내고는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어느 날 제일 먼저 결혼 했던 친구의 사망 소식을 접하기도 했고 한 친구가 병마와 싸우고 있는데,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 얼굴이라도 한번 보아야 하지 않겠냐며 전화를 주었던 친구였다. 그 친구 전화를 받고 상경하여 그 친구와 함께, 한 음식점에서 투병 중인 친구 부부를 만나 저녁 식사를 했다. 친구는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으러 내일 입원한다며 멀리서 찾아와 고맙다며, 항암치료 마치고 건강이 괜찮아지면, 같이 여행도 하고 예전처럼 술 한잔하자며 웃었는데, 그 모습을 남기고 그 친구는 혼자서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살아온 인생의 삼 분의 이를 객지에서 지내면서 살기 위해 장사라는 것을 하다 보니 친구다운 친구를 두지 못한 것이 하나의 이유이고 또 다른 이유는 특히 이곳은 참으로 텃세가 심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포항시 한 지역에서 장사하다 자리를 잡을 만하니 임대인이 점포세를 100% 올려달라는 말에 돈이 없었던 나는 포항시의 외곽지인 영일 군에 소속된 작은 읍 단위로 옮겨온 것이 벌써 근 26년이나 되었다. 그 당시는 완전히 촌이었는데, 지금은 이곳도 포항시 속하게 되었다.

 

 

 

 

 

이곳으로 옮겨오자 동종의 업종 사람들이 영업에 필요한 자제를 못 받게 방해하여 참으로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다가가려고 시도를 해보아도 쉽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굳이 다가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세월이 흘러 그런대로 자리를 잡은 후 그런 과정에 관해 이야기하면 이곳 주민들 자신들의 말에 의하면 바닷가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다른 곳에서는 살아보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바닷가라서 사람들이 원래 억세고 그래서 텃세가 심하다는 말에 수긍할 수 없다.

 

 

 

 

 

내 생각에는 대한민국을 망국으로 이끄는 같은 학교에 다녔다는 학연에 지역이기주의인 지연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몇 년 전 이곳 시의원 선거 기간에 유세차량의 시끄러운 유세 방송을 들으며 손님으로 오셨던 50대 중반 손님의 말을 옮겨보면 새끼들 왜 저렇게 시끄럽게 떠들고 다녀, 개새끼라도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면 당선되는데, 공천받았으면 가만있어도 당선될 텐데, 떠들기 왜 떠들고 다녀 시끄럽게라는 말을 한다. 그러한 지역이기주의가 타향사람들에게 배타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지역이기주의는 경상도에만 있는 것이 아님은 안다.

 

 

 

 

 

 

나는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하자는 마음을 가졌었고, 이곳 장학회 사무국장이 찾아와 함께 장학회를 함께 하자고 해 몇 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점포를 이곳으로 옮기자 같은 업종의 사람들이 장사를 못하게 방해하기에 그 후에는 모든 것을 접고 혼자서 지내오다 보니, 답답할 때 차 한 잔, 술 한잔할 친구를 갖지 못했다. 이번 친구가 다녀간 후 이제 노년의 나이이다 보니 어렸을 때의 풍경이 다 사라지고 오직 지번만 남아있는 고향이지만, 그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고향의 옛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그곳에는 이번 다녀간 친구도 있고, 몇몇 친구들과 후배들이 있다. 그 친구들이 있는 고향이 그리운 오후이다.

 

 

 

 

                                                          위 작품은 신영복의 담론에 실려있는 것임.

 

 

 

 

한 친구가 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카락이 다 빠졌습니다. 그러자 그의 친구들이 모두 머리카락을 다 밀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머리카락이 빠진 친구에게 가발을 사주는 일은 어쩌면 모발이 없는 게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보다는 모두 함께 머리카락을 밀고 아픈 친구의 모습과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감동이며 힘이 되는 위로 입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지금의 당신 모습 그대로 멋지다고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봉희의 내 마음을 만지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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