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워보자

心田農夫 2006. 4. 9. 14:10
 

없는 시간 내어 짧은 시간에

짧은 글을 보고 생각 할 수 있는 소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시집대신 사왔던 책에서 예전에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다시 읽었을 때 새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요즈음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새 대가 늘고 있다는 통계를 보면

그 이유가 다양 하지만 공통된 것은

남에게 구속을 받기 싫어서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하지 않던가,

자유를 너무 사랑해서 혼자이고 싶은 가보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서 살지 말라고 神은 南과 女를

창제 하지 않았던가?

나만을 생각하다보니,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그 맛과 멋을 모르는 것 같다.

얼마 전 여고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하는 말이  ‘야, ㅇㅇ이가 노트를 빌려 달라는 거야,

내 노트를 보면 정리가 잘되어 공부하기가 쉽다고 하면서,

그 애 웃기지 않니,’

그래 ‘애 그럼 좀 빌려주면 어때서 그러니,’ 했더니

‘아저씨는 그러면 그 애가 힘도 들이지 않고

나보다 더 낳은 등급을 얻는다 말이에요. ‘한다.

나보다는 못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애가 내 내신등급 보다 높으면 안 된다는 논리

그것은 우리 교육이 만들어낸 산물은 아닐까?

그들이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성장을 하고 나니

결혼도 안하고 결혼을 해도 애를 안 낳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이 사회가 만들어 낸 현상이긴 하겠지만

사람은 살아가는 순리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이 되어주는 」의

내용을 보자 얼마나 돕는 다는 것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지를,


거목이 울창한 숲에 큰 불이 일어났다.

모두 불을 피해 달아났는데, 단 두 사람만이

그 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장님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절름발이었다.

절름발이는 볼 수는 있었으나 뛸 수가 없었고,

장님은 빨리 달릴 수는 있었으나 앞을 보지 못 했다.

그래서 그들은 고민한 끝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서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장님이 절름발이를 업었다.

그들은 한 사람이 되었다.

절름발이는 볼 수 있었고 장님은 걸을 수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도와서 결국 그 불길 속을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다.


이것이 그 책의 짧은 내용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많다.


전쟁 중에 적군을 피해 도망을 가던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총을 맞고 피를 흘렸다.

한 사람이 가망이 없으니 나두고 가자고 했으나

한 사람은 이 무섭게 추은 날씨에 나두고 가면 곧 얼어 죽을 것이라면서

같이 갈 것을 주장 했으나,

한 사람은 그럼 너나 같이 오라고 하면서 두 사람을 뒤로하고는

가버렸다.

나머지 한 사람은 그 부상한 동료를 매고 눈 속을 해치면서

하루를 꼬박 산속 길을 걸어가다 보니

자신들을 버리고 먼 저간 그 동료는 얼어 죽어 있었다.

그러나 부상을 당한 전우를 업고 힘들게 가던

그 군인은 몸에서 땀이 나서 그 혹한의 추위를 이길 수가 있었고

결국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 갈 수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글을 통해서 보더라도 인생이란 바다는 혼자서 항해 하는 것 보다는

선장과 항해사와 그리고 선원이 함께한다면

보다 나은 인생의 바다를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하지 않던가.

그것이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묻어있는 두레요 품앗이가 아닌가.

유태인들이 자녀에게 고기를 주기보다 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 준다한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일등 할 것만 가르치는 것 보다는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가정, 학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세상 모든 것은 조화 속에서 어우러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세상의 순리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