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현충일아침에 생각하는 어린시절

心田農夫 2006. 6. 6. 13:03

 

 

 

오늘은 현충일이다.

나는 현충일하면 제일 먼저 동작동 국립묘지가 생각이 난다.


국민학교 시절(지금은 초등학교라 하지만 구지 그렇게 부르고 싶다)

몇 번인가 소풍을 그 곳으로 가기도 했다

그 만큼 그때는 갈만한데도 없었고

그곳같이 잔디와 나무가 잘 정돈되어 있었던 곳이 드물었다.

 

지금이야 국립묘지 앞을 지나 이수교를 거쳐서 방배동 사당동 그리고

봉천동 신림동도 갈 수가 있지만

내 어릴 때는 국립묘지 앞이 버스의 종착역이었다.


지금 반포동의 아파트촌과 그리고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이 있는 곳은 한강의 백사장이었다.


가을이면 동네 형들과 친구들이 모여서  밤을 따러 관악산으로 가기도 했는데

버스비도 없어 그 먼 거리를 걸어서 갔다 오기도 했었다


나이 먹은 지금 생각을 해도 먼 거리건만.

(나이 탓이 아닐 거다 너무도 차만 타고 다니는 현실 때문은 아닌가?)


아무튼 용산을 출발하여 한강다리를 건너서 노량진거처 흑석동을 지난

동작동이란거리는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닌데


그 곳은 그래도 도로가 있어서 걷기가 좋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시골길이고 야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관악산까지 걸어갔었다


그 때야 교통수단이 좋지 않을 때라 걸어 다니는 것이 당연한 것 이였다

전차 삯이 이원오십전이고 버스비가 삼원 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 안 되는 것 같아도

그 시절은 작은 돈이 아니었다.


그리고 현충일이 다가오면 학교에서 일부학생들을 데리고

국립묘지에 청소를 하러 갔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없는 일을 그 시절은 다 그거니 했는데


지금의 학부형들 같으면 난리에 난리가 났을 것이다

국립묘지 청소도 그렇고 대통령이 외국순방을  떠날 때면

학교수업도 빼먹고 동원된 학생들이 손에 태국기를 들고

몇 시간 전부터 김포공항 가는 도로변에 서서

대통령이 탄 차가지나가는 그 짧은 시간

몇 번의 국기를 흔들기 위해서 동원 되는 것이었다.


지금 젊은 엄마들 자기자식에게 꾸지람과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고

선생님 집에까지 쳐들어가고

학교에 찾아가 사표 내라고 하지를 않나

무릎을 꿇게 하지를 않나


타이머신 있다면

그런 엄마들 실어다 그 세상 한번쯤은 구경 시켜주고 싶다

소풍삼아서 말이다. 시간여행 관광코스로 괜찮지 않을까?


그렇다고 그 독재자가 판치던 세상이 옳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참 세상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내가 관악산을 찾아 밤을 따러 갈 수 있었던 것이나

지금도 이렇게 문화의 해택을 받으며 살 수 있는 것이나


문제의 그 학생이 선생님에게 야단과 반성문을 쓰라는

선생님과 공부하고 

그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도

그리고 그 엄마의 극성인 그 무지도

나라가 있고 그 나라가 건재한 덕분 아니겠나.


이 모든 것이 국립묘지에 묻혀계신 분들 덕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전 선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자는 사이렌이 울렸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분들을 생각하는

온 국민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어린시절의 추억에 젖어보면서 현충일 이 아침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