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5

이해와 오해의 간극(間隙)

하나의 현상을 가지고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걸 보아도 저마다 자기 나름의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 남이 나를, 또한 내가 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이해하고 싶을 뿐이지.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타인(他人). 오해란 이해의 이전 상태가 아닌가.…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중에서 손님으로 오셨던 한 사찰의 보살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이 절에 다니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까지, 시간 가는지도 줄도 모르고 이야기했다. 자신이 사는 면으로 들어가는 막차 시간이 돼서야 일어서 가셨다. 그 후 두어 달이 지나서 불쑥 점포에 들어와서 손에 들었던 보자기를 풀면..

한 보살의 법명에 떠오른 글귀

법(法)은 일체 만물이니 나타난 것은 총칭이요. 공(空)은 공적(空寂)이니 나타난 것의 바탕이다. 있음에 집착함이 법전(法纏)이요. 없음에 붙잡힘이 공전(空纏)이다. 제법(諸法)이 눈앞에 있다 하나 알고 보면 일체는 본디 다 공이요. 일체는 개공(皆空)이라 해도 그 일체가 곧 그대로 우주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조지훈의 『채근담』중에서 손님으로 오신 한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 말씀에 맞추어 대답했더니 불교에 관해서 대화를 할 수 있어 좋다고 하시며 불교를 믿느냐고 물으시기에 종교는 갖고 있지 않지만, 불교의 사상은 좋아 불교에 관한 책을 조금 보았을 뿐이라 했다. 자신은 시간을 내어 담양에 소재한 사찰에 불경 공부와 기도하러 간다고 하신다. 사찰에 가면 모든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