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그리고 그 속의 이야기

할머니의 생신

心田農夫 2007. 9. 13. 15:14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감인가

중년과 함께 온 외로움에서 일까

세월의 흐름에 허전함 느껴서일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부모님의

생각이 부쩍 떠오르는 요즘이다.


새해 다이어리를 받으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전년도의

다이어리를 펴놓고 가족들의

생일을 옮겨 적는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얼굴을 모른다.

한반도 뵙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이북이 고향인 우리가족은 유일하게

나만이 남쪽인 서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피난 당시 이북에 남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뵙지를 못 했다.


지금도 이북에는

나의 존재를 모르는 누나가 계시다,

나는 누나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누나는 남쪽에 두 동생이 있는 줄만 알고

또 하나의 남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누나의 생일까지도 다이어리에 적어 놓는다.

그 일은 꽤나 오래전부터 매년 해왔었다.


적어 놓았다고 특별히 어른들의 생신날에

제사라든지 상을 차리는 것은 아니다.

그냥 알고나 넘어가자는 생각 이였는데,


이제 아버지마저 가시고 안계시니,

어머니도 보고 싶고 부모님의 생신날에

그냥 보낸다는 것이 왠지 허전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몇 년 전부터 들었는데

매년 그냥 보내고는 했었다.


그러다 아니다 싶어 몇 일전 집사람에게

며칠  후 다가올 어머니 생신날에는

제사는 안 지낸다고 해도 어머니 생존에

좋아 사시던 음식이라도 해서 먹으며

딸아이들에게 오늘이 할머니 생신이라고

가르쳐 주면서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얼굴도 보지 못한 시어머니

성품이 어떠하셨는지

알 수 없는 시어머니


무엇을 좋아 하셨는지

무엇을 싫어 하셨는지

전혀 모르는 시어머니의 생신날에

음식을 장만 하라는 일이 어찌 보면

딱한 일이라 생각 할지도 모르겠으나


나이 들어감인지

허전함이 깃드는

계절인 가을 탓인지

왠지 부모님이 그립고 보고만 싶어진다.


그래서 며칠 전 집사람에게

억지로 할 필요는 없고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아내에게

어머님 생전에 좋아 하시던 음식

몇 가지를 알려 주었다.


바로 오늘이

어머니의 87회 생신이시다.


아침 일어나 식탁에 앉으니

미역국과 내가 이야기 했던 음식들이

소담스레 차려져 있었다.


아이들에게 

오늘이 할머니의 생신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이 음식들이 할머니가

좋아 하시던 음식이라 하면서


내 젊었을 때 할머니와 찍은 사진과

할머니와 지내왔던 이야기를 하면서

아침을 먹었다.


바쁜 아침이라 일어나는 순서대로

먼저 먹고 각각 직장과 학교로 향했지만

집사람이 이야기를 했던지


오늘만은 다 같이 식탁에 앉아

짧은 시간 이였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침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생신을 기억하면서

그리움도 달랠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 가족의 소중함에 대하여

작은 가르침 줄 수가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바쁜 아침 짧은 시간 이였지만

평소와는 전혀 다른 식탁에 마주앉아

단란한 아침 식사로 작은 행복도 느꼈다.


 

 

'우리집 그리고 그 속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빠는 요리사, 딸은 사진사  (0) 2007.10.01
오점 아닌 오점  (0) 2007.09.18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더니  (0) 2007.07.07
작은 깨달음  (0) 2007.05.08
오월에 기도  (0) 2007.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