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그리고 그 속의 이야기

오점 아닌 오점

心田農夫 2007. 9. 18. 13:56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시(詩)는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란

시집의 서시(序詩) 일부이다.


이시는 시인이 소망을 담고 있다.

세상의 갖은 풍파 속에서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고픈 시인의 소망인 것이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그것도 나라 빼앗긴 식민지의 삶에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가 어이 쉬운 일인가


시인이 살아가면서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기를 소망한 것처럼


나는 이제까지 학교생활에서

한 번의 결석도 없이 학교를 다니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해왔었고

그것을 지키며 결석 없이 학창시절을 마쳤다.


내가 그토록 결석을 안 하려 한

이유는 어찌 보면 결벽증이라고 할까?


출석부 나의 이름 옆에 이렇게

/ 빨간 줄이 대각선으로 그려지는 것이

왠지 그렇게 보기 싫어서였다.


정확히 몇 학년 때인지

지금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한날 복도에서 만난 나에게

선생님이 교탁위에 있는 출석부를

교무실로 가져다 달라는

심부름을 한 후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출석부를 가져가려고 가서

교탁 위 있는 출석부를 들추어 보았다.


몇  학우들의 이름 옆에는 대각선의

빨간 줄이 몇 개씩 그어져 있는 것이

어린 나이였지만 너무도 보기 싫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결석 없이 학교생활을 마쳐야 갰다고

굳게 마음먹었던 것이,

그리고 그 결과는 상이라고는

받아보지 못했던 나에게

개근상이라 하여 상까지 주는 것이 아닌가.

 


딸아이들이 상장을 타오는 날이면

“아빠도 학교 다닐 때,

   이런 상 받았지요? “ 하고

똑 같은 말을 하고는 했을 때


“아니, 아빠는 학교  다닐 때

   받은 상이라고는 개근상 밖에 없었다. “

 똑같은 대답을 하고는 했었다.


학교에 결석을 하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을 했고 그 결과일까,

여지까지 결석 한 번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고, 마칠 수 있었다


그러한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고

나이 들어 시작한 대학원에서도

스스로 적용하여 작년 1학기 2학기를

한 번의 결석 없이 다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피치 못하게

가야 할 곳도 생기고 안갈 수없는

자리도 생기고는 했다.


그러나 다 제처 두고는 학교 출석을

우선시 하여 일 년 두 학기를 동안

단 한 번의 결석도 없었다.


내 살아가는 동안 배움의 터전인

학교생활에서 만큼은 어떻게 하드라도

결석은 안 하리라 마음을 먹었고


그것이 배우는 학생의 본문이고 배우겠다는

학생으로써의 자세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올 전반기인

3학기에 결석이 하루 생기고 말았다.



내가 결석을 하고 말았다는 표현대신

결석이 생기고 말았다고 표현한 것은


우리나라의 교육법에도

결석처리하지 않고 출석으로

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도

결석으로 처리를 한 것이었다.


이번 봄에 건강하게 생활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시더니

그만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나 저세상으로 가썼다.


그날이 학교 가는 날과 겹쳐

하루를 수업에 빠지고 말았다 .

 

그런데, 

그날 두 과목의 강의가 있었고

한 교수는 출석처리를 했는데,

한 교수는 결석처리를 했단다.


어차피 결석이 처리되었고

이번 학기만이라도 결석 없이

4학기를 마쳐야 갰다고 생각을 했다.


긴 방학을 지내고 9월10일 개강

새로운 마음으로 학교에 갔는데

마침 결석처리를 한 교수가 4학기

첫 시간에 들어왔다.


첫 시간에 이번학기는 이렇게

강의를 할 것이라고 하면서

시험 50%. 출석 20%(1회 결석 시 1점 감점).

발표 및 토론 20%. 과제 10% 으로

학점을 매길 것이라면서 덧붙여 말한다.


“여러분이 출장이나 상을 당했을 때는

결석처리 하지 않겠습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그럼 나는 왜 결석처리를 해,


참으려고 하다가

“할 말 있으면 하세요.”


교수가 말하기에

“아니 지난 학기 일이라 그만 두겠습니다.”하니,

“말하세요.”한다


그래

“지난 학기일이라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하라고 하시니 그럼은 하겠습니다. “


“지난 학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하루 결석을 했는데

왜 결석으로 처리 하셨습니까? “ 하니


교수 왈

“내가 부모님이 돌아가셨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 한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리오.

목구멍에 말이 올라오는 것을

꾹 눌러 참아야 했다.


나이가 어려도 한참어린 교수를

학우들 앞에서 망신살이 뻗치게

하고 싶었으나 나

 

내 참아야지, 참지, 하면서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버지의 일을 마무리 하고

다음 주에 학교에 가니

수업시간에 출석처리를 한

교수가 '교수일동'이라고

적힌 조의금 봉투를 주었는데

 

자신은 몰랐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평상시 출석을 부를 때

출석을 못한 학우들의 출석 못한

이유를 출석한 학우가 말해주고는 하는데

그럼 그날 조문을 왔던 학우들이

나에 결석한 이유를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학기 말에 정리를 하면서

결석한 이유를 깜빡 잊어버리고

결석처리를 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내가 부모님이 돌아가셨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


 최고학부의 교수라는 사람이

궁색한 변명보다는 솔직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지,


아무튼 일생동안 한 번도 안 빠지려고

무지도 노력을 하면서 학교생활을 해왔고

이제까지 잘 지켜왔는데,

 

나의일생에 다녔던 학교생활에서

나의 이름 석 자 적힌 출석부는

하얀 백지상태로 남기고 싶었는데


늘그막에 시작한 학교생활에서 그만

나의 이름 옆에 단하나의  / 대각선의

빨간 줄이 오점 아닌 오점으로 남고 말았다.

 

 

 

 

 

 출 석 부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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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전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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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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