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그리고 그 속의 이야기

말이라, 다 말일까

心田農夫 2007. 11. 6. 14:25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성서 <잠언> 중에서

 

 

살아가면서 벙어리가 아니고야

말을 하지 아니하고 살 수는 없으리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서부터 잠들기까지

우리는 수없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으리라

말이 생활이고 말은 우리 삶의 일부이니까

 

그러나 그 무심히 한 말이 보이지 않는

화살이 되어 상대방의 가슴에 깊숙이 박혀

크나큰 상처를 주고 그 상처는 실로

오래 동안 남는다는 사실을 알고나있는지 모르겠다.

 

일요일 오후에 집사람과 동네 뒷산을

산책하던 중 후배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틀 전에 모임에 만났는데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받으니, 대뜸

 

“형님, 별일 없으십니까?” 한다.

 

“이사람 모임 날 보고 얼마나 지났다고

별일 있을 일이 있는가. 라고 했더니,

 

후배 말을 하는 데 어찌나 황당한 소리를 하는지,

 

“모임 날 뵈니 얼굴이 까칠 해서

어디 아프신 줄 알았습니다.”

 

이어서 “정말 별일 없으십니까?”하고는

 

“형님, 아프지 마십시오.

육십까지는 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육십까지,---”

 

참 어이가 없는 말이라 화도 못 내고

몇 마디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오십이 벌써 지난 사람에게

“육십까지는 사셔야지요. 라니”

 

도대체 무슨 의도에서 한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으며,

“참 그 사람 말 함부로 하네,” 했더니

 

누구냐고 묻는다. "한사장인데,"

 

“나보고 육십까지는 살아야 할 것이 아니냐 하는데,

어이가 없어서 말이야,”

 

“아니 내생명이

오늘내일 경각에 달려있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하면 안 될 텐데,

 

멀쩡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육십까지는 살아야하지 않겠나니,”

 

산속을 걸으면서도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

생각을 해보아도 이해가 안 된다.

 

말의 실수라고 하기에 너무 어이없는 말이 아닌가?

 

집사람이 무심히 한말이겠지, 잊으라.

말을 하기에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맑은 공기마시자고 나섰던 산책길에

그 소리가 귀전에 맴돌아 공기의 시원함도 잊었다.

 

저번에는 다른 친구에게

말을 실수를 해서 모임에도 안 나오게 하더니,

 

생각 없이 말을 마구 하는 그 친구를,

누군가가 나서서 말 좀 조심하라고

일러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든다.

 

성경말씀처럼

그 친구 입술을 단속 못하면 언제가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을 것만 같다.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