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성서 <잠언> 중에서
살아가면서 벙어리가 아니고야
말을 하지 아니하고 살 수는 없으리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서부터 잠들기까지
우리는 수없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으리라
말이 생활이고 말은 우리 삶의 일부이니까
그러나 그 무심히 한 말이 보이지 않는
화살이 되어 상대방의 가슴에 깊숙이 박혀
크나큰 상처를 주고 그 상처는 실로
오래 동안 남는다는 사실을 알고나있는지 모르겠다.
일요일 오후에 집사람과 동네 뒷산을
산책하던 중 후배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틀 전에 모임에 만났는데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받으니, 대뜸
“형님, 별일 없으십니까?” 한다.
“이사람 모임 날 보고 얼마나 지났다고
별일 있을 일이 있는가. 라고 했더니,
후배 말을 하는 데 어찌나 황당한 소리를 하는지,
“모임 날 뵈니 얼굴이 까칠 해서
어디 아프신 줄 알았습니다.”
이어서 “정말 별일 없으십니까?”하고는
“형님, 아프지 마십시오.
육십까지는 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육십까지,---”
참 어이가 없는 말이라 화도 못 내고
몇 마디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오십이 벌써 지난 사람에게
“육십까지는 사셔야지요. 라니”
도대체 무슨 의도에서 한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으며,
“참 그 사람 말 함부로 하네,” 했더니
누구냐고 묻는다. "한사장인데,"
“나보고 육십까지는 살아야 할 것이 아니냐 하는데,
어이가 없어서 말이야,”
“아니 내생명이
오늘내일 경각에 달려있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하면 안 될 텐데,
멀쩡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육십까지는 살아야하지 않겠나니,”
산속을 걸으면서도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
생각을 해보아도 이해가 안 된다.
말의 실수라고 하기에 너무 어이없는 말이 아닌가?
집사람이 무심히 한말이겠지, 잊으라.
말을 하기에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맑은 공기마시자고 나섰던 산책길에
그 소리가 귀전에 맴돌아 공기의 시원함도 잊었다.
저번에는 다른 친구에게
말을 실수를 해서 모임에도 안 나오게 하더니,
생각 없이 말을 마구 하는 그 친구를,
누군가가 나서서 말 좀 조심하라고
일러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든다.
성경말씀처럼
그 친구 입술을 단속 못하면 언제가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을 것만 같다.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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