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

心田農夫 2008. 3. 15. 08:33

 

  요즈음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반은 넋을 놓고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손님들의 전화 주문을 받고는 그냥 잊고

손님이 오셔야, 아차,

후배의 부탁을 받고는 그러마. 했다는데,

도통 기억이 없고

동서의 매일 주소를 적어놓고는

어디에다 적어 놓았는지 찾아도 없다.

 

블러그에 들어가 본지도 오래 되었고

통하는 블러그 마실 가본지도 오래 되었다.

더구나 못 쓰는 글이지만 글을 적고는 했는데

글을 올린지도 오래 되었다.

 

어느 날은 블러그를

폐쇄할까도 생각을 하다가도

그 폐쇄 할 시간의 여유조차 없다.

 

오늘 이렇게 블러그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저번 주에 개강한 대학원 소식이 궁금하여

무슨 소식이라도 있나 아침에 잠깐 카페에 들렸다.

동기의 글을 보고 마음에 찡한 감동을 느껴다.

 

어쩌면 저렇게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쩌면 저렇게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지,

세상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긴 채

속과 겉이 전혀 다른 말들과 글로 표현을 하는데,

 

진솔한 글을 보면서

한 잔의 커피와 함께하는 이아침

기분이 매우 상큼한 것이 마음이 가볍다.

오늘 하루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시어머니의 연세가 여든 하나 인줄 몰랐습니다.

일흔여덟에 저희 집에서 몇 달간 머물렀는데,

그 사이 몇 해가 지나있었던 사실을 잊고 살았습니다.

제 마음이 어머니에게서 떠나있었다는 사실을 늦게야 알게 된 것이지요.

 

저희 집에서 잠시 머물 땐 당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제게 주셨습니다.

칠순 때 딸들에게서 선물로 받은 반지였습니다.

커다란 보석이 박혀있는 반지인데,

보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는 보석이름조차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절을 했는데도 기어코 제 보석함에다 넣어주시고는 부산으로 가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포항에 한 번도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잘못한 게 너무 많습니다.

가슴에 돌덩이 하나를 얹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먼 길임에도 불구하고 빈소를 찾아주신 분들과,

따뜻한 관심을 베풀어주신 위덕5기생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제가 가진 작은 마음이나마 나누면서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 드림

 

 

 

<아래 글은 위 글을 보고 적은 본인의 댓글 내용이다.>

 

 

○ 선생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로서의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 있고

또한 자식으로서 짊어지고 가는 것이 있는 듯합니다.

그것을 우리의 선조들은 한이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모께서 반지를 주신 것으로 보아

당신 생각에는 선생님의 사랑에 대한

마음의 표현을 반지와 함께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31일이면

아버지의 1주기가 돌아옵니다.

 

선생님의 시어머님처럼

아버지도 돌아가시기 한 일 년 전쯤

당신이 끼시던 반지를 3개나 저에게 주시더군요.

책상서랍에 넣어놓고는 지나다가 아버지가 가시고 난후

어느 날 서랍에서 보고 요즈음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끼고 다닙니다. 08:57

 

댓글은 글자 수가 한정이 되어서

더 이상 쓰지를 못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댓글이라 그냥 미완으로 남긴 채,

카페에서 옮겨와 블러그에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