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무화과라니
고재종
끝내 하고 싶은 말
한 송이 피워내지 못하고
내벽에서 생기는 지독한 담즙을
애써 삼킨 삶이
저렇게 뭉툭한
저렇게는 검붉은 곱사등이라니,
눈 닫고 귀 담고
입 없는 채로
허구보다 더 끔찍한 생의
맨얼굴을 하고
인사동 좌판
리어카 위에서
울근불근 거리고 있는
저 꽃도 아니고 열매도 아닌
생의 실격자(失格者)들의
마지막 노여움들이라니.
감미로운 커피의 향 내음을
맡으며 펼쳐들은 「시(詩)하늘」
“독자가 뽑은 좋은 시”란
페이지에 다소곳이 놓여있는
“저런, 무화과라니”라는 제목이
나의 눈을 멈추게 했다.
한 열흘 전쯤 되었나.
길 건너 앞집 병원장사모님이
검은 봉지에 담은 것을 건네며
“무화과인데 잡수어보세요”한다.
받아서 봉지 안을 보니
시인의 말처럼
그 모양도 특이하고
파랗다고 할까 아니 붉다고 해야 하나
어느 것은 익을 대로 익어 갈라져
입을 해 벌리고 있는 모습이
식욕을 당기기는커녕
먹기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웃이라
생각을 해서 가져다주신 것을,
받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퇴근할 때 집으로 가져가서
집사람에게 건네주면서
“소주나 사다가 술에 담가 놓아봐,
그래도 술을 담그면 향이라도 있겠지“
하고는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집사람이 하나 먹어보란다.
보기에 그래서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손으로 반 나우어서
그 반쪽을 한입물고 먹었더니,
의외로 그 맛이 참으로 좋았다.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더니,
처음 먹어보는 무화과
보기보다 맛과 향이 좋았다.
하나를 먹고는 또 하나
들고 먹으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겉모습만 보고 대하지는 않았어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는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을 하지 않으리라는
깨달음의 작은 지혜를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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