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속의 작은 정원

무화과가 준 지혜

心田農夫 2008. 9. 25. 11:54

저런, 무화과라니

 

                          고재종

 

끝내 하고 싶은 말

한 송이 피워내지 못하고

 

내벽에서 생기는 지독한 담즙을

애써 삼킨 삶이

 

저렇게 뭉툭한

저렇게는 검붉은 곱사등이라니,

 

눈 닫고 귀 담고

입 없는 채로

허구보다 더 끔찍한 생의

맨얼굴을 하고

 

인사동 좌판

리어카 위에서

울근불근 거리고 있는

저 꽃도 아니고 열매도 아닌

 

생의 실격자(失格者)들의

마지막 노여움들이라니.

 

 

 

 

 

 

감미로운 커피의 향 내음을

맡으며 펼쳐들은 「시(詩)하늘」

 

“독자가 뽑은 좋은 시”란

페이지에 다소곳이 놓여있는

 

“저런, 무화과라니”라는 제목이

나의 눈을 멈추게 했다.

 

한 열흘 전쯤 되었나.

길 건너 앞집 병원장사모님이

검은 봉지에 담은 것을 건네며

 

“무화과인데 잡수어보세요”한다.

받아서 봉지 안을 보니

 

시인의 말처럼

그 모양도 특이하고

파랗다고 할까 아니 붉다고 해야 하나

어느 것은 익을 대로 익어 갈라져

 

입을 해 벌리고 있는 모습이

식욕을 당기기는커녕

먹기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웃이라

생각을 해서 가져다주신 것을,

받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퇴근할 때 집으로 가져가서

집사람에게 건네주면서

“소주나 사다가 술에 담가 놓아봐,

그래도 술을 담그면 향이라도 있겠지“

하고는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집사람이 하나 먹어보란다.

보기에 그래서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손으로 반 나우어서

그 반쪽을 한입물고 먹었더니,

의외로 그 맛이 참으로 좋았다.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더니,

처음 먹어보는 무화과

보기보다 맛과 향이 좋았다.

 

하나를 먹고는 또 하나

들고 먹으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겉모습만 보고 대하지는 않았어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는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을 하지 않으리라는

깨달음의 작은 지혜를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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