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속의 작은 정원

내 시인(詩人)이라면

心田農夫 2008. 10. 13. 16:11

 

 

 

 

 

 

 

이제는 제법

아침녘엔 선선하다.

 

딸아이를 학교 근처에

내려주고 나면은

급할 것 없는 출근길이기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천천히 차를 몰면서

차창으로 다가오는 먼 산 풍경과

길의 가로수를 보면서 여유를 부려본다.

 

푸른 던 잎이

어느새 많이도 퇴색되어 있고

가로수 밑 인도 위에는

푸르던 잎이 적지 않게 낙엽 되어 뒹굴고 있다.

 

내 시인(詩人)이라면,

차장으로 다가오는 저 풍경을

한 편의 시(詩)로 표현 할 수 있으련만

 

글 쓰는 제주가 메주인지라,

시인들은 가을을

어찌 표현할까? 하는 궁금함에

이리저리 시집 찾아 가을을 적어본다

 

 

 

 

 

 

 

가을 어스름

 

                      김 두 섭

 

유리거울

빌딩숲 반영으로 살아가는

맨 몸으로

베어 달린

한 잎가진 가지마다

산 노을 감감한 능선 한 덩이 그림물감

 

시린 꽃대를 수로 놓은 은빛 햇살

소슬히 고삐를 몰고

빈들에 나서보면

 

억새풀

볼 비비며 가는 스산한 바람 소리,

 

허허한 저 들녘

반 팔 벌린 고목(古木)새로

누울 자리 헐어진 담벼락 모퉁이에

청아히 씻기어 가는

고요론 새벽녘

 

 

 

 

 

 

 

 

 

 

 

 

 

 

 

 

가을 2

 

조 태 일

 

짙푸른 잎새에 내려와

뒹굴며 놀던 햇빛도

허공중에 아스라이 떠돌고

 

낮 하늘의 별들은 숨어서

맑은 귀 열고

지상의 풀벌레 소리 듣는다.

 

여름의 허물인

이 가을은

밤낮을 안 가리고

나를 가비얍게 들어 올리고 있다.

이 지구까지를

가비얍게 들어 올리고 있다.

 

 

 

 

 

 

가  을

 

                  김 중 위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품에 안고

산이 졸고 있다.

이를 모를 산새들이

영혼을 위로라도 하듯

저마다 울음소리를 나뭇가지에 걸치고

 

고개를 떨군

나뭇잎엔

눈물이 맺힌다.

 

위로 하는 것은

바람뿐이었다.

 

 

 

 

 

 

가을 소녀

 

             최 의 득

 

단풍잎에다

소녀 얼굴 살짝 걸어 놓고

바람이

꿈속으로 데려오길 밤마다 기다렸습니다.

 

소녀는 코스모스 닮은 미소로

나풀나풀 하늘로 달리면

나의 얼굴 빨간 감이 되어 갑니다.

 

사모하는 마음

날이 갈수록 무게가 더하여지나

참나무 잎이 다 떨어져 갈 무렵에도

바람은 소녀를 데려다 주질 않습니다.

 

아무리 저녁 기도를 올려도

까만 머릿결 밤하늘은

멀뚱멀뚱 눈만 깜박이고 있습니다.

 

 

 

 

 

 

 

가을의 노래

 

                             김 승 남

 

내 영혼의 텅 빈 뒤뜰엔

가을이 소리 없이 내렸습니다.

푸르던 여름 나무도

어느새 희끗 바래어지고

맑은 하늘이 이젠 눈에 시립니다.

 

 

내영혼의 뒤뜰엔 밤이 들면

귀뚜라미 소리

가만히 귀 기울여 봅니다.

밤하늘 별빛을

오래도록 바라보기도 합니다.

 

저렇게도 머언 빛들,

저러게도 작은 소리들이

가을밤을 가득 채우고 있다니요

그리고 나는

그대의 빛과 소리로 가득합니다.

 

그대 이곳에 아니 계시어도

나의 가을은

그대로 인해 이토록 가득합니다.

 

 

 

 

 

 

 

 

 

 

 

 

 

 

 

 

 

 

가을 산에서

 

최 경 호

 

가을이

턱밑을 고이고 있는데,

 

잠자리 한 마리가

더위 먹은 눈으로

 

벗고 노는

허연 강줄기를 입질하더니

 

갈대의 자유를

부추겨 수음시키고

 

저는 가을 산에서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가을 꽃

 

                        정향(淨香)

 

가을에는

하늘높이 올라가 목청 높여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

 

꽃들은 밤마다 별 보며 속삭이다가

이슬 젖어 스스로 고개 숙여도

피었다 지는 숙명이 어찌 그리도 영원한가.

 

꽃으로 향기로 말없이 기억하게 하는구나.

아름답게 스러져 눕는

꽃봉오리를 사랑한다.

한도 끝도 없이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만 주다가 나비 따라

나풀거리며 가는 정열의 꽃이여

눈짓만 주다 가는 꽃이여

웃음꽃 핀 곱디고운 향기와 모양을 자랑하며

아지랑이 어룽 어룰한 길 찾아올 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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