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아련히 떠오르는 그날의 그 모습

心田農夫 2008. 11. 29. 12:00

 

배추장사

 

                           박 병 영

 

배추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배가 출출하면

무시하나 칼로 깎아 베어 먹고

 

바람 불어 추우면 털목도리

더 높이 세우고 움츠리며

손님 오길 기다리는 저 아주머니

 

어쩌다 손님이 오면

배추 하나 꺼내 칼로 푹 갈라

얼마나 싱싱하고 좋으냐고 말한다.

 

바람 불어 빨개진 코, 빨개진 볼.

떨리는 손으로 돈 받아 돈주머니에 넣고

다시 손을

돈 주머니 밑 따스한 곳에 넣는다.

 

입김으로 한 번 불었다가

손을 한 번 비볐다가

또 손님이 오면 배추 싱싱한 걸 꺼내

반으로 뚝 쪼개어

다시 연설한다.

 

봉래동 시장 담벼락 밑에 앉아

배추 파는 저 아주머니.

배추 많이 팔리길

나는 빌 뿐이다.

 

 

시를 음미하고 있자니

나를 먼 옛날로 이끌어 간다.

 

내 학창시절

그 때는 왜 그리도

겨울날씨가 추웠는지

 

어찌나 추운지

매서운 날씨라는 표현을 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 깊고 깊은 한강이

꽁꽁 얼어 설매, 스케이트를 타고는 했었다.

 

요즘은

물이 오염되어서인지

아니면

지구의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한강도 잘 얼지를 않고

겨울 날씨도 예전처럼 매섭도록 춥지 않다.

 

날씨가 추워지면

어머니는 겨울 준비를 하신다.

월동에 필요한

연탄을 광에 쌓기 시작하고

이맘때면 김장 준비를 하신다.

 

지금이야 슈퍼에 가면

김치를 비롯하여 안파는 것이 없고

돈만주면 김치를 사다가 봉지를 찢어 꺼내어

그릇에 담아내면 그만인 세상이 되었지만

 

그 시절에는

김장을 하지 않으면

겨우내 먹을 반찬이 없는 것이다.

 

지금 김장을 한다하여도

그 수량을 많이 하지를 않지만

 

그 때는 각 가정마다

1접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1접이면

배추 백포기이니

그것이 보통 일인가,

김장은 가정의 대단한 연래 행사인 것이다.

 

 어머니도

매년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내 기억으로는 보통 1접반을 하시고는 했다.

 

그렇게 힘들게 담가서는

김장을 못 담그는 이웃들에게

양동이에 비닐을 깔고 담은 김치를 넣어

두서너 가정에 돌리곤 하셨던 기억이 난다.

 

김장을 하는 날은

배추를 절일 때부터 버무려

땅에 묻은 커다란 김장독에 담기까지

보통 이틀이 걸렸다.

 

김장을 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오셔서

함께 거들어서 하는 품앗이가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절인 노오란 배추 속살에

양념을 듬뿍 넣어 돌돌 말아서

입에 넣어주시던 어머니,

 

와작와작 씹어 먹고는

맵다하면서도

“어머니 하나 더 싸주세요” 하면

힘드시고 바쁘신 데도

“그래 맛있나”하시면서

양념 속을 헤집고 굴을 골라

 

굴 넣어 한 쌈 다시 돌돌 말아

입 속에 넣어주시던

그 모습이 살포시 떠오르며,

그 때의 그 맛까지 같이 살아나

지금 나의 입안에 담뿍 마른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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