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구나.

心田農夫 2009. 3. 25. 10:33

효자(孝子)의 부모 섬김은,

거처하실 때 공경스럽게 받들고,

지극히 봉양할 때 즐겁게 받들며,

병이 나시면 염려하고,

상을 당했을 때에는 슬픔을 다하며,

제사를 지낼 때에는 엄숙함을 다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를 모두 갖춘 연후에야 능히 부모를 섬길 수 있는 것이다.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은

위에서 있을지라도 교만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 있어도 다투지 아니한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교만하면 망하고,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혼란스러우면 형벌을 받게 된다.

이 세 가지를 없애지 않고는 날마다 삼생의 고기를 바쳐

봉양한다 하여도 오히려 불효(不孝)를 하는 것이다.

                      소혜왕후 한씨(韓氏)의「내훈(內訓)」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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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에 다소곳이 자리한

「내훈(內訓) 」이란 책이

눈에 들어와 오래 만에 꺼내어 보았다.

 

책을 꺼내어 뒷장부터 펴보면서

멀리 흘러간 아련한 시간을 더듬어 본다.

 

그 뒷장에는

아직도 선명한 먹물 빛의 글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좋은 형수

  좋은 올케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 되소서.

              1993년 2월 3일

                      형부가”

 

적혀있는 날짜를 보니

벌써 십육 년 전의 일이 되었다.

 

그 십육 년 전 어느 날

퇴근을 하여 들어갔더니,

처제가 집에 와있었다.

 

어인일이냐고 물었더니,

며칠 쉬려고 내려왔단다.

 

쉬었다가는 것은 좋은데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냐? 물었더니,

별일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동안 시부모님들과 따로 살아왔는데,

시어머님이 몸져누우셔서 함께 살기로 했고

모시고 살기 전에 친정에 가서 며칠을 쉬고 오라고

남편이 해서 어머니가 계신 친정에 갈까했는데,

왠지 어머니한테 가는 것보다 언니와 이야기도 하고

이곳이 편할 것 같아 왔다고 하며

“형부, 불편해도 이해 주세요.”한다.

 

형제들 중에서 막내인 처제는

박씨(朴氏 )집안의 장손인 남편을 만남으로 해서

그 가문의 큰며느리로 살아왔던 것이다.

 

시부모님과 함께 산지 몇 년 후에

시어머니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시고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그동안 홀로되신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왔는데

그 시아버지도 얼마 전 세상을 떠나셨다.

 

집에서 한 일주일 쉬고 나서

다음날 올라간다고 하기에

퇴근길에 책방에 들려

「내훈(內訓)」을 사들고 와,

붓 펜으로 위의 글을 적어 처제에게 주며,

 

시부모님과 살다보면

때로는 힘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니,

그럴 때마다 이 책을 보면서 힘을 내라고 주었던 책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명절 때 들렸더니

집사람에게

“언니, 책이 좋더라 한 번 읽어봐”하며 건넸었다.

 

“좋은 형수

  좋은 올케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 되소서.

              1993년 2월 3일

                      형부가”라는

글씨는 아직도 빛바래지 않고

선명히 살아 뜻을 전하고 있는데,

그 시부모님들은 다 떠나시고 안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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