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그대들은 행복의 원천에 대해 아는가

心田農夫 2009. 3. 27. 12:08

 

행복한 인간은

올바른 판단력을 소유한 사람을 뜻한다.

행복한 인간은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고유한 자신만의 선을 벗으로 삼는 사람이다.

행복한 인간이란

결국 이성이 모든 상황을 증명하고 충고하는 사람이다.

                                         미셀 포쉐의 「행복의 역사」중에서

 

 

딱히 어디 적(籍)을 두고 있지 않아서 그런지

퇴근 후 책상에 앉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그 덕에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예전에 비해 빠르다.

 

그래서 인지 아침에 일찍이 눈을 뜨게 된다.

오늘도 아침 일찍 눈을 뜨게 되어

마땅히 할 것도 없고 하여 텔레비전을 켜더니,

오늘도 어김없이 장자연씨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언제까지 뉴스의 화제(話題) 되고

어떻게 결말이 날까? 하는 생각과

세속인들의 뇌리에서 얼마동안이나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세간에 화제가 된 이 사건이

앞으로는 과연 다시는 안 일어날까?

하는 의구심도 가져본다.

 

대다수의 세인들은

아마도 이런 사건이 처음으로 알고 있으리라.

그러나 거의 똑같은 사건이

30여 년 전에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리라

 

그 때는 신문 한쪽 구석의 작은 부분에

‘신인 여배우 자살하다’란 제목으로 실렸고

전파 매체도 몇 번 전하는 것으로

세속에 관심을 끌지를 못하고 지나가고 말았다.

 

삼십 여년의 시간이

나의 기억을 희미하게 하지만,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사건을 토대로

소설의 형식으로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과

그 책을 읽고 무척이나 분개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책의 제목을

「어느 여배우의 죽음」(?)으로 기억하고 있고

그 책의 저자는 그 배우의 친구인 것으로 기억한다.

 

책의 내용을 더듬어 기억해 보면,

배우로 성장하려는 배경도, 돈도, 연줄도 없는

나약한 신인 여배우에게 어느 날 감독이 여관으로 부른다.

 

그리고는 자신의 말을 잘 들으면(?)

배우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욕망을

행동으로 옮기려 할 때 뿌리치고 문을 박차고 뛰쳐나온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녀는 어떠한 단역도 맡을 수 없었다.

시세말로

그 세계에서 완전히 왕따를 당했던 것이다.

 

그 세계에서 그녀를 배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감독의 막강한 힘을 동원한 로비(?) 때문이었다.

 

가는 곳마다 따돌리는 현실에

더 이상 버티지를 못하고

절망을 늪에 빠져 자신을 지탱할 수 없었던

그녀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 시대에서

행복을 찾아서 배우의 길을 가고자 했던

두 젊은 여인을 죽음으로 몰았던 사람들,

 

향락과 쾌락을 행복이라 생각하는

그 몰염치한 인간들에게

미셀 포쉐의 말을 빌어 말하고 싶다.

 

미셀 포쉐는 말한다.

이성과 윤리적 판단으로 물질적인 소유에서 벗어나

현재에 안분자족하는 자세가 행복의 원천을 이루는 것이다.”

 

행복은 우리에게 필연적인 운명이기도 하지만,

이성과 윤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행복을 찾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행복이 아닌 금수나 추구하는 욕망인 것이다.

 

행복을 찾아 배우의 길을 택했던

젊은 두 여인,

같은 시대,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지켜주지 못한 아픔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리라.

 

젊은 두 여인이

비록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을 찾지는 못했다 해도

올바른 판단력을 소유한 사람들이요

고유한 자신만의 선을 벗으로 삼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