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하여 생각하기

촌지, 많이 드리자

心田農夫 2009. 5. 15. 16:46

말골분교 김성구교사

 

                          신 경 림

 

북한강가 작은 마을 말골분교 김성구교사

종일 남에게서 배우는 것이 업이다.

오십 명이 좀 넘는 아이들에게 배우고

밭 매는 그 애들의 어머니들한테서 배운다.

뱃사공한테 배우고 고기잡이한테 배운다.

산한테, 들한테, 물한테 배운다.

제 아내한테도 배우고 자식한테도 배운다.

남들이 그를 선생이라 부르는 것은

그가 이렇게 배운 것들을

아무한테도 되돌려준다고 말하지 않는 대서다

그는 늘 배우기만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질문에서 배우고

또 아이들의 장난과 다툼에서 배운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모르랴

배우기만 한다는 그 한데서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똑같이 배우고 있다는 것을

더불어 살아가면서 서로 배우고 가르친다는

평범한 진실마저 모르는 잘난 사람들이

자기만이 가르치고 이끌겠다고 설쳐대어

세상이 온통 시끄러운 서울에서

백리도 안 떨어진 북한강가 작은 마을 말골에서

 

종례

 

김 윤 현

 

중학교 3학년 때였던가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면 일찍 보내주고

못하면 외울 때까지 우리를 잡아 놓으시던

은사님 아직도 그렇게 하실까.

생각하면서 종례하러 교실에 들어간다.

날마다 지각 단속, 자세 불량, 정신 통일

성적표를 쥐고 면박을 주면서

가만히 있으면 강물 위처럼 제자리도 못 지킨다고

짜릿한 말만 주입시키는 내가 미안하구나.

사람답게 살아가는 이야기 한 마디 없고

길이 있다는 책 한권 권하지 못하면서

국ㆍ영ㆍ수를 잡으라고 포크레인처럼 핏대를 올리지만

문경 어딘가 고향이라는 병태는

공부한 만큼 인생이 펼쳐지느냐고

성적은 우리의 상표가 아니라고

단호히 외치면 늙으신 은사님이

더욱 생각나는 오후 시간

 

 

민주주의는 교실에서부터

 

                                                                                                                     문 병 린

 

민주주의는

교실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교사는 진실을 말해야 하고

학생들은 그 진실을 배워야 한다.

교단은 비록 좁지만 천하를 굽어보는 곳

초롱초롱한 눈들을 속여서는 안 된다.

자유로이 묻고

자유로이 대답하고

의문 속에서 창조되는 진리

아니오, 속에서 만들어지는 민주주의

외우는 기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일등짜리만 소용되는 출세주의 교육

꼴찌를 버리는 교육이어서는 안 된다.

일등하기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음독자살하고

참고서 외우는 죽은 교실이 싫어서 목을 매달고

점수에 납작 눌려 있는 초조한 가슴들

교실이 감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친구의 목을 조르는 경쟁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이면 오순도순 정이 익어가고

눈과 눈들이 별이 되는 꽃밭

서로의 가슴에 사랑의 강물이 흐르는

교실은 너와 내가 하나 되는 공동체

각기 다른 빛깔로 피는 꽃밭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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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간다고 서두른다.

엄마가 일찍 일어나 밥을 하여 식탁에 차려놓았는데

늦었다며 아침식사도 거른 채 안 먹고 학교에 간다고 나선다.

 

왜 그리 일찍 가느냐고 물으니

수업시작 하기 전에 파티를 한단다.

“무슨 파티?”하고 물으니,

스승의 날이라고 음료와 과자, 케이크를 가져다 놓고

조촐하게 스승의 날 파티를 한다는 것이다.

묻지는 않아 자세히는 몰라도 그 파티 중에

각자 준비한 꽃과 함께 선물도 선생님께 전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올해는 그나마 학교에 간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는 두 아이다 중학생으로 같은 중학교에 다녔는데

스승의 날을 휴교를 한다고 해서 학교에 가지를 않았다.

 

이유는 촌지 때문이라고 했다.

촌지(寸志)를 막기 위해서 학교까지 휴교를 한다는 것에 대하여

한 사람의 학부모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휴교를 한다고 촌지를 줄 학부모가 안 줄 거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받을 마음이 있는 선생님이 안 받겠는가?

 

촌지,

좀 드리자 아니 좀 드리는 것이 아니라

봉투도 크게 만들어 그 봉투 속에 가득 넣어 드리자

고액권을 그것도 빳빳한 새것으로 해서 두 손으로 공손히 드리자.

 

철없는 내 새끼,

말 지긋지긋 안 듣는 내 아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내 자식에게

지식에 지혜까지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아니던가.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 없는 우리 부모들 아닌가.

자식이 잘된다면 아까울 것 없는 우리 학부형들이 아니던가.

 

그러니 우리 많이 드리자

아니 반듯이 드려야 한다.

그것이 자식을 둔 학부모가 해야 할 도리다

그리니 오늘 같은 스승의 날은 잊지 말고 찾아뵙고 드리자

 

철없는 내 새끼 철들게 하여주셨으니 고맙고

부모 말도 지긋지긋 안 듣는 내 아이 맡아서

말 잘 듣고 사람구실하게 교육 해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 아닌가.

아무것도 모르는 내 자식 가르쳐서 상급학년,

상급학교에 진학시켜주시니 이 또한 고마운 일 아닌가.

그러니 성심성의껏 정성을 담뿍 담아 드리자

 

단,

지금 내 아이 가르치시는 선생님에게는 그저 감사한 마음만 전하자.

아니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서로에게 부담 없는 작은 선물,

예쁜 꽃 한 송이라도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 담아 전하자.

 

그러고 전학년도에 가르침을 주었던 선생님

전에 다니던 학교 선생님에게 드리자는 것이다.

 

지금 내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께 촌지를 드리는 것은 촌지가 아니다.

그것은 촌지가 아니라 촌지란 이름을 빌린 뇌물(賂物)인 것이다.

뇌물을 주는 것은 남의 자식은 무시하고 규율을 어겨서라도

내 자식에게만 이롭게 특별대우해서 잘 봐달라는 것이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은사님에 대한 은혜를 생각하여 찾아뵙고

지난날 귀한 가르침 주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하자

뇌물 말고 촌지, 감사한 마음을 담은 촌지를 전하자.

촌지는 말 그대로 그 뜻은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