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하여 생각하기

그대들, No에 대한 의미를 아는가?

心田農夫 2009. 6. 10. 15:43

 

언제가 광고를 보니까 이런 것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Yes 라고 할 때 No 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 광고를 보면서 나는 두 편의 시조를 생각하고는 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힌 듯 어떠하리.

우리도 저와 같이 천년만년 살아보세

 

새 왕조를 창업하면서 이방원이

포은 정몽주를 포섭하기 위한 시조이다.

 

이에 대한 정몽주의 단호한 뜻을 담은 답 시조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퇴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참으로 모든 사람이 Yes 라고 할 때

No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표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살아오면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살아왔다고 나름대로 자부한다.

젊어서는 그런 것에 대해 ‘혈기 때문이라고,’

‘성격이 모가 나서’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좋은 것이 좋은 것이지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닌데

왜 둥글둥글 살지를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는 한다.

 

그렇다 그렇게 할 때마다 여러 가지로 손해도 보고

상대가 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 때는

힘겨운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는 했지만,

나아지거나 고쳐지는 것을 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둥글둥글 산다는 그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그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은

뒤에서 이런저런 불평불만에 심지어는 거침없이 욕을 해댄다.

그러다 그러한 그들은

멍석을 펴주며 하고 싶은 말하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꾹 다물고는 꼬리를 뒤로 감춘다.

 

나이 먹어 늦깎이 공부를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공부를 마칠 수가 있었다.

공부하는 이년여의 기간 동안 몇 가지 일로 인하여

마음고생도 했었는데, 어제 또 한 번의 마음고생을 하여야 했다.

 

대학원 논문을 끝내고 나서였다.

같이 논문을 썼던 학우가 한 번 모이자는 것 이였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을 하고 나서 한다는 말이

P교수가 돈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나의 논문 지도교수였고 평소 존경을 해왔던 터라

설마, 교수가 학생을 불러서 돈을 그것도 직접 요구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결국 그곳에 참석하였던 젊은 여학우와

직접 들었다는 학우 두 사람이 P교수의 연구실에 들려

사실을 확인하여 나중에 연락하기로 하고는 헤어졌는데,

 

우연히 한 학우가

그냘 저녁에 갑자기 모여 술 한자 하자는 번개팅에 관한 글을

카페에 올렸기에 나갔는데,

 

그 자리는 P교수의 성토장처럼 불평불만 한마디씩을 쏟아놓았다.

듣고 있자니, 내 가족이 내 친구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불평불만을 듣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즉 왜 잘못 일을 해가지고

남의 입방에 오르고 내리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존경하던 교수가 그들의 안주가 되어 씹히는 것이 속상하고 화도 났다.

 

그래 그런 마음이 헤어져 들어와

늦은 시간임에도 P교수에게 항의의 전화를 직접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렇게 돈이 필요하냐고, 그렇다면 내가 주겠다고,

하면 한참을 이야기 하자니, 다음날 연구실로 오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정확히 시간을 맞추어 갔다.

 

나는 별로 술을 잘하는 편이 못된다.

P교수하고도 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어 그 교수도 알 텐데,

밤늦게 술까지 먹고 전화했다는 것만을 가지고 이야기하기에

늦게 전화를 한 것에 대하여 사과를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학생에게 돈을 요구 할 수가 있냐고 했더니,

전통이란다. 그렇게 말하기에

논문을 쓰는 논문학기지만, 한 학기의 학비 몇 백만 원을 냈고

거기다 논문심사비도 별도로 납부했는데, 왜 돈을 요구 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다른 대학원에서는 우리보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심사비도 자신들에게는 적은 액수만이 돌아오기 때문이라며

선배들이 새운 전통이라며 당연하다 당당히 말하는 것이다.

더 이상은 이야기는 좁혀들지 않기에 연구실을 나왔다.

 

돌아온 다음날 은행에서 수표로 찾아 학교로 갔다

출장 중이라는 연구실의 푯말을 보고 돈 봉투를

P교수 돌아오면 주라고 맡겨놓고 왔는데 몇 일후 조교로부터 전화가 왔다.

 

P교수가 받지 안 받겠다고 한다며,

어찌할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며 입장이 곤란하다는 조교에게

P교수가 요구한 것이니

마음 놓고 써도 된다고 다시 가져다 드리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틀 후 똑같은 전화가 조교로부터 걸려왔다.

진짜 입장이 곤란하다고 하기에 그러면 나에게 보래라고

통장의 번호를 불러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논문을 지도 받는 한 학기 동안 논문지도를 받는 날

식사 때는 식사대접을 하였고 논문이 한권의 책으로 나오던 날

감사의 표시를 어떻게 하여야 할까 고심을 하여야 했다.

그러다 전에 함께 술자리를 했던 것이 떠올라

논문과 함께 양주 한 병을 선물로 가져다 드렸다.

그것은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의 표시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순진한 나의 생각이고 실수였다.

나이는 어리지만 한 기수 위 선배에게 작년에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그 선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선배의 말에 따르면

논문을 갖다 주면서 논문 속에 돈 봉투를 넣어가져다 주었는데,

슬쩍 논문을 들쳐보고도 못 본체 아무 말 안하더라는 것이다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 인사를 할까, 하며

상품권으로 할까, 아니야 그것도 돈이나 마찬가진데,

선물로 하자, 그럼 무슨 선물을 할까 그날의 고심하던 생각이 난다.

차라리 그런 줄 알았다면 봉투에 돈을 집어넣어 그 선배처럼 하였다면

그렇게 몇날 며칠을 어렵게 고심하지 않아도 되었으련만

지금은 알았지만 그래도 솔직히 존경하는 교수에게 돈을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 교수는 대학원 입학 한 후 첫 강의를 맡았고

「불교복지연구」라는 텍스트를 가지고 강의를 하였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 것은 십악에 대한 강의내용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어서는 안 될 열 가지 악에 대하여 하였던 강의,

그러한 강의를 하였던 그 교수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믿었던, 존경하였던, 것이 실망으로 변하였고

돈의 위력을 다시 한 번 깨달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나는 졸업을 하였다.

 

그런데 문제의 발단은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있어났고

우리의 앞의 기수 선배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났었다는 것이다..

 

그 교수님 강의 텍스트로 선정하여 강의한「불교복지연구」라는 과목은

교과부에서 인정치 않은 과목이었기에 학부를 사회복지를 전공하지 않고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나와 같은 3명은

사회복지자격증을 취득하기위하여 배워야 하는 과목 중에

한 과목이 부족한 관계로 사회복지협회에서 자격증을 발급 할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던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한 과목 때문에 한 학기를 더해야 했는데

 

우리 위의 기수들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처럼 한 학기를 다시 한 것이 아니라 그 교수 출석부, 학적부 등을

조작하여 마치 수업을 받을 것 같이 하여 자격증을 부정 발급받게 조작하였는데,

잘 되는 듯 생각을 하였던지, 아니면 망각을 하였던지, 후배인 우리들에게도

똑같은 과목「불교복지연구」를 강의 하였고 선배들처럼 자격을 취득 못 하게하였으니

실수도 한번이면 족하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만 일 년 전에 했던 조작이 발각이 되어

선배들은 자격증취소는 물로 자격증을 가지고 취직한 직장을

그만 두어야 했고, 그 자격증을 토대로 하여 한 등급위의 자격증시험을

통과해 받은 자격증까지 취소되는 소동이 있었다.

그러한 조작한 것에 대하여 올해 학교에서 교수직 파면의 조치를 했고,

학교 측의 고발로 검찰에 수사가 진행 중에 있다.

 

그런 상황을 알고 그 교수의 입장이,

학생들을 위해서 조작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서명을 우리 밑의 기수인 재학생들이 구명운동을 하는데

졸업한 우리 기수에서는 참여하지 않는 것이 마치

내가 주장을 하여 우리기수가 서명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우리기수의 젊은 친구들이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진실을 모르면서

뒤에서 불평불만을 하던 그들은

교수의 잘못에 대하여 직접전화하고 만나서 따진 것에 대하여

그래도 교수에게 학생이 그럴 수가 있느냐는 생각으로

나에 대하여 비판을 하는 태도는 참기 어려웠고

몇 명되지 않는 학우들의 간에 의견이 갈릴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내 이글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올리는 것은

자신을 한 번 뒤돌아보는 기회로 삼아 마음공부를 하기 위함이요.

사회의 잘못된 것들이 한 번에 눈에 들어나게 변하여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지는 않을 지라도

작은 구멍이 거대한 둑을 무너트리듯

언젠가는 잘못된 관행들이 하나씩 고쳐지겠지 하는

바램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없지 않지만

얼마 전에 읽었던 글과 몇 달 전에 읽고 담아 두었던 글을

소가 되새김질 하듯 다시 음미하며 마음을 위로하며 글을 올려본다.

 

권 정생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느님」에 있는 글이다.

사회의 구성원은 인간들이다,

인간들이 모여 사회를 만들고 국가를 만들고 역사를 만든다.

결국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건강한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건강한 사회와 역사 안에서만이 건강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구원은 하늘의 신이 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 구원은 어디까지나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밖에 할 수가 없다.

 

달라이 라마의 「명상으로 얻은 깨달음」에 있는 글이다.

법에 따르지 않는 스승의 지시는 따르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

지시를 따르지 않는 이유를 스승에게 설명해야 하며, 스승이 말했다고

해서 반드시 따를 의무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모두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태도가 아니고, 우리의 지성과 판단으로 보아 법을 따르지 않는 지시는

거부할 줄 아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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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첫째, 우선 모든 내용을 지켜보고 살펴보아야 한다.

그 사람이 고결하다는 확신을 얻기 전까지는 누구도

스승으로 여지지 말라. 이는 매우 중요한 점이다.

둘째, 스승으로 삼은 뒤에도 건전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면 그것을 거부할 자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