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어머니의 가르치심

心田農夫 2009. 8. 8. 16:51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다

세월 따라 사라지는 말들도 많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어머니 생각도 하였다.

 

내 어렸을 적에 수시로 듣던 말 중에

지금은 들어볼 수가 없는 말이 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라는 말이다.

 

지금은 아파트, 빌라 등

대다수 다세대 주택이 보편적이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대게가 단독주택이었다.

 

아침에 집 마당 빨래 줄이나

집 앞의 전신주(電信柱) 위에나,

전신주와 전신주 사이의 전기줄위에서

까치가 앉아 지저기는 소리를 들으면

어른들은 “오늘 반가운 손님 오시려나?”

말씀을 하시고는 하셨는데,

 

도시에서 이제는

까치가 앉아 있을 장소도 없고

까치 보기도 까치소리 듣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그런 말을 들을 수가 없다.

 

어제는 까치도 보지 못하였고

까치의 지저기는 소리도 듣지를 못했는데

반가운 손님들이 오셨다.

 

그래서 일기를 쓰면서 생각이 난 것이다.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들렀다 조금 늦은 시간에

점포 문을 열고 막 청소를 하려는데

형님 친구 분 내외가 들어선다.

 

그 분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나의 둘째형님과

중고등학교에 군대생활까지 함께하셨던 분으로

친형님처럼 생각을 하는 분이다.

 

몇 년 만에 연락도 없이 오시니 반가웠다.

차 한 잔 하시고 그냥 일어서 가시겠다는 것을

이르지만 점심식사하시고 가시라고 하니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그냥 가시겠단다.

 

시간을 보니 11시 24분이다.

그러면 식사는 가시다 하시고

포항에 오셨으니 회라도 잡수시고 가시라고

근처의 회집으로 모셨다.

 

회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딱히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휴가 겸해서 답답함도 풀고 동해안 도로로

강릉까지 가려고 한다는 말에 회를 먹고는 바로

분위기 고즈넉한 차집으로 모시고

향긋한 차까지 대접을 하고는 헤어져 돌아와 왔다.

 

점시도 했고 조금 쉬었다 일을 하는데

보험 설계사가 조그마한 상자에

생활용품을 담아 가지고 오셨다.

잊을만하면 찾아와 차 한 잔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분으로 벌써 만난 지가 4년 정도 되었다.

그 분은 고객관리로 오시겠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반가운 손님이시다.

한참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기시고 나니

 

포항 근교 안강읍에서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선배분 내외가 오셨다.

포항 신항만을 구경하러 가시다 길을 잘못 들었단다.

그러데 갑자기 내 생각이 나서 잠시 들렸노라고 하신다.

 

각자의 삶이 바빠서인지

어느새 만나지 한 7~8년 쯤 되었지 싶다.

이제 노년의 나이 이신데 그때나 지금이나

사모님도 사장님도 별반 변함이 없으시다.

건강이 어떠시냐? 여쭈어 보니, 좋다하신다.

건강한 모습의 두 분의 모습이 정답게 보인다.

 

차 한 잔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가시겠다고 하신다.

시간을 보니 시침이 5시를 가르치고 있어서

저녁식사나 하고 가시라고 하였더니

그냥 가시겠다. 하신다.

 

이곳과 신항만이 가까워

신항만을 둘러보시고 가시는 길에 들리셔서

저녁 잡수시고 가라고 하시니 그러겠다고 하시고 가셨는데

기다려도 오시지를 않으셨다.

혼자 늦은 저녁을 하고는 퇴근을 했다.

 

일기에 오늘 만남에 대해 쓰자니,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내 어렸을 적에,

먼 친척 삼촌이 간혹 찾아오시고는 했다.

그 시절 다 그렇지만 참으로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 삼촌을 친척들은 아편쟁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 나는 어려서 아편쟁이라는 뜻을 몰랐다.

그 뜻은 지금의 마약하는 사람이라고 할까?

 

오시면 항상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했는데,

나는 그것이 몹시 싫었을 뿐 아니라

어머니가 그 삼촌을 대하는 태도도 싫었다.

 

늘 문에 들어서면서

"형수님, 저 왔습니다.”하고 들어서던 그분

항상 술 냄새와 허름한 차림의 모습은

한마디로 거지꼴이다.

다른 친척들은 그 삼촌이 찾아오면

문전에서 돌려보낸다고들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

찬밥이 있음에도 항상 따뜻이 밥을 하여

삼촌에게 상을 내왔고,

가실 때는 적은 액수라도 얼마간의 돈을 지워주시고는 했다.

 

그래 때마다,

“엄마는 내가 돈을 달라면 안주면서

왜, 주정뱅이 삼촌에게는 주는데”하면은

“삼촌에게 주정뱅이라고 말하면 안 돼,”하시며

 

“사람이 사는 집에는 사람이 많이 찾아와야 한다.”

“어떠한 손님이라도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공손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시고는 하셨다.

 

그 시절,

어려서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과

어머니가 삼촌을 대하는 것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이 들어가며 사노라니,

어머니의 말씀과 하셨던 일들을 이해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도

다 어머니 생존에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덕,

그 덕(德) 덕분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는 한다.

 

살아가면서 어느 듯 유전이라도 된 듯

자연스럽게 나도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다.

그래서 어느 누가 찾아와도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반갑고

식사시간이 되면 항상 식사 대접을 한다.

 

어머니 생존에 몸소 행하여 나에게 가르쳐 주신

그 귀한 가르침,

나 또한 나의 두 자녀들에게 전해 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