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아두기

가을하면 떠오르는 것

心田農夫 2009. 10. 14. 11:43

가을하면 떠오르는 것

 

가을하면 떠오르는 것

그것은 아마도 톡 건드리면

심청색 물을 꽐꽐 쏟아낼 것만 같은

청명하고 파란 높고 높은 하늘이리라

 

 

그리고

가을 하면 떠오르는 것

그것은 아마도 신이 그리시는

색색으로 피어나는 화폭의 동양화 같은

울긋불긋 아름다운 곱디 고운 단풍이리라

 

 

그리고

가을하면 떠오르는 것

그것은 아마도 핑그르르

떨어지는 낙엽과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달고 있는 벌거벗은 가지들이리라

 

 

그리고

가을하면 떠오른 것

그것은 아마도 시인의 영혼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태어난 고매한 시어들

한 올 한 올 읊조림을 담은 시집이리라

 

 

 

가을하면 생각나나는 것

그것 중에서 하나인

시집(詩集)

이웃사촌 시인

정향(淨香) 김 미선님

가을 함뿍 담아 가져다 준 시집

「꽃을 가꾸다」에 담긴

시인(詩人)의 시(詩)이다.

5편의 시(詩)중에서 3편을 옮겨본다.

 

 

 

 

마음에 걸린 사랑

 

                             김 미 선

 

바라만 보다

몽창시리 애태우다 가는

마음에 걸려버린 당신

절대로 잊히기나 하겠는지

 

눈에 걸린 채로 살아가자면

길을 오다가다

눈 익은 것에 울컥거리겠지

 

가슴 깊숙이 소화되지 않고 맴도는

사랑의 말 꾸러미

창자 속에 걸린 채

간혹 가슴 비틀며 아프게 하겠지

 

사랑이 영원해지자면

낯선 길에서 혼자 헤매기도 하겠지.

 

※‘몽창시리’- 경상도 방언으로 ‘몹시’

 

 

 

꽃을 먹었다

 

                            김 미 선

 

청명한 날 오후

공원에 앉아

눈앞에 수복이 일렁이는

꽃을 냠냠거리며 따 먹었다.

 

꽃 먹은 삼삼한 눈

그 맛이 눈물 나게 시고

꽃에 취해 어질어질

온몸 찔려 일어나지 못했다

 

꽃이 된 나

절정에 소름이 돋고

눈이 시고

입이 시고 가지에 앉은

재잘거리는 말들이 다 시였다.

 

 

 

 누가 물으면

 

                           시주머니

 

누가 물으면

나는 오래전에

육지였다고 말합니다.

누가 물으면

아주 오래전

훨씬 이전부터 나는

바다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닷가에 살았던 육지는

육지가 그리웠고

육지에 살았던 바다는

바다가 그리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다는 육지가 되었고

육지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또 섬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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